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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Jun 27. 2018

장자 제 17편 추수 마지막  

추수 마지막 장에 등장하는 ‘장자’와 ‘혜시’의 논쟁은 아무래도 ‘장자’의 억지주장이라고 보는 편이 옳다. 논리적으로는 분명히 ‘장자’가 물고기의 마음을 알 수 없는 것인데, ‘장자’가 ‘혜시’의 말 꼬리를 붙잡고 ‘혜시’의 논리를 반박하고 있다. 즉 말로서 말을 반박하는 궤변에 가깝다.  


문제의 핵심은 물고기의 즐거움이 아니라 어떻게 말하고, 또 어떻게 그 말에 대한 공격을 하는 가이다. ‘장자’ 스스로 『장자』 전편을 통하여 그렇게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 有爲이다. 후대의 학자들(곽말약 - 궈모루 등)도 이 부분에 대하여 장자가 궤변을 펼치고 있다고 비판한다.  


조선 전기의 유학자 ‘서거정’역시 이 부분을 중요한 모티브로 사용하여 시로서 ‘장자’를 비판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南華至樂道優游 (남화지락도우유) 남화는 ‘지락’에서 마음대로 노닒을 말하고, 

이때 ‘남화’는 ‘장자’를 말하고 ‘지락’은 『장자』 ‘지락 편’인데, ‘지락 편’은 이 이야기 즉 ‘추수’ 다음 편을 말한다.  


聊復濠梁汗漫遊 (료복호량한만유) 호량에서 마음껏 즐기고 놀았으니 

‘호량’은 바로 ‘장자’와 ‘혜시’가 물고기 이야기를 한 호수(濠水)를 말한다. 


非子是魚魚是子 (비자시어어시자) 자네가 물고기 아니요, 물고기가 자네 아니며 


果周爲蝶蝶爲周 (과주위접접위주) ‘주’가 나비 되고, 나비도 ‘주’가 되었네. 

‘장자’의 이름이 ‘주(周)’다.  


養生不假庖丁術 (양생불가포정술) 양생에는 포정의 기술 빌릴 것 없지만 

‘양생’은 ‘양생주’를 말함이요 ‘포정’은 고기 잡는 것으로 도를 이룬 사람을 말한다. 


知醜空令海若咻 (지추공령해약휴) 지혜가 부족하여 공연히 北海 若을 떠들게 하는구나 

북해의 신 ‘약(若)’은 ‘추수’ 편에 주요한 화자이다. 


畢竟物齊齊底物 (필경물제제저물) 만물은 본래 평등한데, 다시 무슨 물을 평등케 하리 

서거정이 ‘장자’의 논리를 은근히 비하한다. 물을 평등하게 한다는 것은 제물론의 논리를 비판함이다. 


嗒然終日泛虛舟 (탑연종일범허주) 멍하니 온종일 빈 배만 띄우누나 

여기서 장자의 이름 주(周)와 음이 같은 배 주(舟)를 교묘하게 사용하여 ‘장자’가 필경 쓸데없는 일에 매달려 허망하다는 이야기를 멍하니(嗒然)로 표현하고 있다. 


서거정의 시집[四佳詩集] 〈莊子濠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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