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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Jul 01. 2018

장자 외편 제 18 至樂(1)

‘장자’가 생각한 즐거움은 무엇이었을까? 『장자』 제 18 편 至樂(지락) 첫 부분에서 즐거움이 무엇이라고 규정하지는 않지만 그 바탕, 혹은 범위를 이렇게 정하고 있다.  


“천하에 지극한 즐거움이 있는가? 없는가? 내 몸을 살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없는가? 이제 무엇을 하고, 무엇을 그만두어야 하며, 무엇을 피하고 무엇에 머물며, 무엇을 위해 나아가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마침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해야 하는가?”라고 말한다.  


이 부분은 장자 외편의 여러 이야기들처럼 장자 당시에 써지지 않았다는 느낌이 분명 있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 속에는 불교적 이미지가 강하게 묻어 난다. ‘장자’ 이후 도교가 크게 번성하던 시절은 당나라 시절이었다. 당나라 시절 도교가 번성했던 이유는 조금 우습지만 도교의 창시자 격인 노자의 속성이 이씨였는데 당나라의 開祖가 바로 이연(당 고조)의 이씨와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국가적 통치이념의 수단으로써 도교가 필요한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 덕에 ‘장자’도 ‘南華眞人(남화 진인)’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더불어 그의 저작인 『장자』또한 상당 부분 재편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당나라 시절은 역시 중국 불교의 융성기에 해당하는데 특히 교종(이론 중심 불교)에 있어 법장이 완성한 화엄 교리는 우리나라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그 외에도 너무나 유명한 '현장'과 '규기' 등 뛰어난 승려들에 의해 완성된 유식설을 기초로 한 법상종이 한 시대를 풍미하였다. 동시에 선종(수행 중심) 불교도 뛰어난 승려들이 출현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일본에 그 영향을 미치게 된다. 5세기 말 경 중국에서 선종의 개조가 된 '달마대사'를 시작으로 이어지는 '혜가', '승찬', '도신', '홍인'의 법맥을 '신수(북종선)'와 '혜능(남종선)'이 각각 북과 남에서 또 다른 개조가 된다. '신수'와 '혜능'이 활동하던 시기가 7세기경으로서 소위 盛唐시대가 열리는 시기였다.  


'혜능'이 개조가 된 남종선의 기본철학은 不二法門이다. 불이법문은 대승불교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空’ 사상의 핵심이다. 대승불교의 공 사상이 체계화된 것은 인도의 유마힐에 의해 편찬된 유마힐 경(B.C. 1세기경)이다. 이 경전은 중국의 후진 시대(4~5세기) 구마라습에 의해 번역되면서 크게 성행하였다. 유마힐 경에 의하면 不二의 법은 주체와 객체의 분멸을 초월하며 선악과 도덕의 분별도 초월하는 것이다. 유와 무의 구별을 초월하고 색과 공의 분야 또한 초월한다. 이를테면 불이법문은 ‘분별’을 초월하고 ‘般若(반야)’의 자리에 이르는 것이다. 이 경지는 言語道斷(언어도단)이요, 不立文字(불립문자)의 경지이기는 하지만 경지를 낮추고 낮추어 풀이하자면 구별하는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는 이야기로 이해할 수 있다. 


다시 『장자』 제 18 편 至樂(지락) 첫 부분으로 돌아가 보면 지극한 즐거움의 조건인 活身(활신)의 방법에 대한 방법적 회의가 나온다. 그 방법적 회의는 스스로가 가진 경계를 허무는 것이다. 마침내 즐겁고 싫어하는 경계조차 허물어야 지극한 즐거움이 나타난다는 이야기인데 이는 남종선의 공사상, 즉 불이법문의 요체인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분명한 증거는 없지만 어쩌면 당나라 시대 도가의 제자들은 자신들의 위대한 스승 ‘장자’의 이야기에 당시 성행하던 불교적 이미지를 차용하여 이 이야기를 덧붙였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명백하게 그렇지 않다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유사한 점이 많아 보인다. 하기야 불교 또한 도교의 영향을 받아 중국 송대의 ‘看話禪(간화선)’ 수행법이 도교에서 일부 유래했음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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