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준식 Jul 29. 2018

장자 제 19 편 달생(1)

장자 제 19 편 달생  

더위와 싸우지 않고 더위를 수용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뭔가에 집중하면 그나마 더위를 조금은 잊는다. 수용이 아니라 잊는다는 것에 스스로 만족해야 하는가? 장자 이야기를 하루 종일 곱씹어 본다.


1. 새 번째 이야기 - 무위의 ‘장자’에서 유위의 ‘장자’로  


달생은 내편의 양생주와 연결되어 있으나 양생주에서 ‘장자’가 주장하는 논지를 조금 넘는다. 즉, 무위의 ‘장자’에서 유위의 요소를 부가시킨 것은 후대의 장자를 계승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어쨌거나 달생 앞 부분의 이야기는 전혀 『장자』 답지 않은 부분도 있어서 『장자』라는 책의 일관성이 의심되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매미 잡는 사람 이야기는 아무리 생각해도 ‘장자’가 가장 필요 없다고 이야기하는 인위가 강조되고 있다. 내용은 이러하다. 


“仲尼가 초나라로 갈 적에 어떤 숲 속으로 나가다가 곱사등이 노인이 매미를 마치 물건을 줍는 것처럼 손쉽게 잡는 것을 보았다. 중니가 말했다. “재주가 좋군요. 무슨 비결이라도 있습니까?” 


노인이 대답했다. “비결이 있지요. 대여섯 달 동안 둥근 구슬 두 개를 포개 놓아도 떨어뜨리지 않을 정도가 되면 매미를 잡을 때 잡는 경우보다 놓치는 경우가 적어지고, 구슬 세 개를 포개 놓아도 떨어뜨리지 않을 정도가 되면 매미를 잡을 때 놓치는 경우가 열 번에 한 번 정도가 되고, 구슬 다섯 개를 포개 놓아도 떨어뜨리지 않을 정도가 되면 마치 땅에 떨어진 물건을 줍는 것처럼 매미를 잡게 됩니다.” 


해석 본에 따라 구슬이 되기도 하고 알이 되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둥근 물건 둘을 쌓으려면 얼마나 힘든 일인가? 거의 기예의 수준이 되어야 하는데 이렇게 쌓으려면 어마 어마한 노력을 하라는 이야기가 아닌가! 하기야 내편 養生主의 庖丁(포정) 또한 19년 동안 소를 잡았는데 칼날은 무디어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그 경지에 이를 수 있으며 이 또한 무위와는 거리가 멀다. 


2. 다섯 번째 이야기 - 위대한 일상에 대하여 


전개지(가상의 인물, 일반적으로 도를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이다.)라는 인물이 있다. 이 인물은 祝腎(축신)이라는 인물로부터 배움을 받은 인물이다. 당연히 축신은 도를 알고 있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그 전개지에게 주나라 위공(주나라 환공의 아들로서 이름은 竈(조))이 도를 묻는다. 그러자 전개지는 겸손하게 자신은 그저 축신의 시중만 들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재차 위공이 묻자 전개지는 이렇게 대답한다.  


“善養生者 若牧羊然 視其後者而鞭之(선양생자 약목양연 시기후자이편지) 양생을 잘 하는 사람은 羊을 기르는 것과 같아서 ‘제대로 가는 놈은 놔두고 뒤처진 놈을 보고 채찍질을 한다.’고 했습니다.” 


무슨 말인지 위공이 다시 묻는다.  


그러자 전개지는 다시 두 명의 가공인물을 이야기한다. 한 명은 單豹(선표)라는 은자, 그리고 또 한 명은 張毅(장의)라는 인맥이 넓은 인물이었는데, 선표는 내면을 든든히 했으나 어느 날 호랑이 밥이 되어 목숨을 잃었고, 장의는 외면을 잘 관리했으나 40에 그만 속병이 들어 죽었으니 둘 다 한쪽으로 치우쳐서 목숨을 잃었다. 따라서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에 대해 노력을 통해 채워야만 한다. 뭐 이런 이야기다. 선표는 외면을 장의는 내면을 잘 양생 하였다면 삶을 잘 보존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비록 외면과 내면의 조화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왠지 ‘장자’의 무위에 대한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어진 듯 보인다. 상당히 엉뚱한 이야기로 느껴진다. 


그러자 우리의 중니(당연히 우리가 아는 그 공자는 아니다.) 선생이 한 마디 하신다. 


“안쪽만을 중시하여 은둔하지 말 것이며 밖으로만 나가 너무 지나치게 드러내지 말고 內와 外의 한가운데에 枯木처럼 서야 할 것이니 이 세 가지를 잘 얻으면 그 명예가 반드시 최고의 경지까지 갈 것이다. 사람이 두려워하는 것은 性欲(성욕-원전에는 袵席之上(임석 지상-이부자리)으로 표현)과(어떤 학자들은 일상생활로 풀이하기도 한다.) 음식을 먹는 문제(食欲)인데 이것을 경계할 줄 모른다면 내면의 수양을 잘못한 것이다.” 


정말 유교의 공자다운 말씀이다.  


은둔이니 명예니 하는 용어는 모두 ‘장자’와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일상에 대한 이야기도 ‘장자’와 약간은 거리감이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장자 외편 제 18 至樂(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