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강물처럼 흐르고
Johan Barthold Jongkind(요한 바르톨트 용킨트 1819~1891)는 네덜란드 오베레이셀(Overijssel) 출신의 화가로서 넓은 범위의 인상파 화가에 속한다. 그가 주로 활동한 지역은 프랑스였기 때문에 그의 작품이 지금의 오르세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의 작품들은 젊은 Claude Monet(끌로드 모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는데 훗날 모네는 용킨트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용킨트는 나의 눈을 교육시킨 장본인이다”
센 강(La Seine)은 프랑스 중부 부르고뉴 지방에서 출발하여 프랑스 북부, 세느 분지에 물을 공급하는 총 776Km의 길이를 가진 강이다. 특히 파리 시를 관통하는 이 강은, 수많은 예술의 소재로 차용되어 센 강은 지리적 자원으로서의 강보다 문화적 자원으로서의 이미지가 더 강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노트르담 사원(Notre Dame de Paris)은 파리의 주요한 상징물이다. 노트르담을 영어로 풀이하면 “Our Lady of Paris”(파리의 숙녀)인데 그만큼 파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건물이다. 특히 노트르담 사원이 위치하고 있는 시테섬은 유명한 Place Dauphine(도푄 궁전)과 새로운 다리라는 뜻의 Pont Neuf(퐁네프 다리)로, 파리 시내와 연결되어 있는 섬이다.
네덜란드 출신의 용킨트가 1860년 파리에 완전히 정착한 후, 그려진 이 그림은 그가 가지고 있는 파리라는 도시에 대한 애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유람선 위에서 손을 들고 있는 사공으로부터 강 위에 중첩적으로 놓여있는 다리와, 그 뒤로 보이는 노트르담 사원의 풍경을 화면에 대각선으로 과감하게 배치함으로써 마치 그림을 보고 있는 우리가 그 시절 용킨트와 함께 세느 강변에서 풍경을 함께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들게 한다. 이 풍경은 용킨트가 파리를, 그리고 센 강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었는가 하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러한 그의 회화에 대하여 Émile Zola(에밀 졸라)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용킨트는 파리의 근대적인 양상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화가이다."
夫大塊載我以形(부대괴재아이형) : 자연은 우리에게 모습을 주었다
勞我以生(로아이생) : 삶으로써 우리를 수고롭게 하고,
佚我以老(일아이로) : 늙음으로써 우리를 편하게 하며,
息我以死(식아이사) : 죽음으로써 우리를 쉬게 한다.
故善吾生者(고선오생자) : 그러므로 스스로의 삶을 잘 사는 것은,
乃所以善吾死也(내소이선오사야) : 곧 스스로의 죽음을 잘 맞이하는 것과 같다.
이 세상에 태어남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다. 따라서 자연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었다’는 표현이 맞다. 마찬가지 이유로 자연은 우리에게 죽음도 준다. 하여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은 ‘맞이한다’로 표현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완전하지는 않지만, 거의 자신의 선택과 결정이고 동시에 그 선택과 결정에 따르는 결과를 수용하여야만 한다. 삶을 살아가는 일은 이러한 일들의 반복이며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몹시 수고롭다.
나이가 들면 어느 정도 복잡한 일들로부터 멀어지게 되고 또, 스스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한 미련을 접게 된다. 그 이유는 젊은 시절과 같은 에너지가 없기도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보니 중요하다고 생각한 대부분의 일들이 그 중요도를 잃거나 또는 처음부터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은 일이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하여 한편으로 아쉽고 또 한편으로 편안해지는 순간이 바로 노년이다.
그러나 죽음에 이르기 전까지 편안하기는 해도 삶은 쉴 수는 없다. 살아가는 모든 일로부터 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죽음이다. 여기서 장자는 죽음이야말로 삶의 결과라고 생각한다.‘스스로의 삶을 잘 사는 것’이란 바로 삶을 꾸려 나가는 당사자가 가지는 삶의 대한 의지를 말함이고 그 의지로부터 비롯되는 것을 장자는 ‘죽음을 잘 맞이하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