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국의 비급전관
범상치 않은 모습의 두 노인이 마주 보고 아주 심각하게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펼쳐놓은 두루마리에 있는 글귀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매우 중요한 뭔가가 적혀 있음이 틀림없다.
이 그림을 그린 김명국은 그의 대표작 ‘달마도’에서 알 수 있듯이 감필법의 달인이다. 감필법이란 단 몇 번의 붓질로 형체를 그려내는 그야말로 달인의 경지에 올라야 가능한 운필법이다. 노인의 옷을 몇 번의 붓질로 그려 내고는 얼굴과 수염은 매우 정교하게 묘사함으로써 절묘한 대비를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뒤에 배경이 되고 있는 잎이 떨어진 매화나무는 또 다른 감필의 놀라운 표현능력을 보여준다. 가지 끝은 마치 낙서를 하듯 휘리릭 빠르게 그려놓았는데 그것도 나름대로 운치가 있다. 바닥에는 또 다른 비급이 말려져 있고 긴 낚싯대가 놓여있는데 이 또한 날렵하고 간결한 필치로 그려져 있다.
도교라는 종교는 매우 신비적인 경향이 강하다. 신비주의는 결국 합리와 이성을 기초로 하지 않고 인간들의 덧없는 욕망과 그로부터 만들어진 상상, 그리고 실현 불가능 것들(영생 혹은 장수, 하늘을 나는 것 등)을 얼버무려 놓은 것인데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세상사를 등한시하게 하고 삶의 의욕을 잃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완전히 부정적인 경향만 있는 것도 아니다. 험한 세상에서 지친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고 그 경지에 이르려는 개인적 노력을 하게 하여 세상의 문제로부터 자신을 돌이켜보게 하는 긍정적인 기능도 없지 않다. 무엇이든 한쪽 방향으로 완전히 기우는 것, 이를테면 지나친 몰입 또는 미혹이 문제라면 문제일 것이다.
사람들의 삶이 어려워지고 시대가 불투명해질수록 이러한 신비주의는 영향력을 가지게 되고 쉽게 사람들에게 파급된다. 이 그림이 그려진 17세기는 임란 후의 조선이다. 어지러워진 민심과 조선 정부를 객관적 상황에서 본다면 이런 그림이 그려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마치 중국에서 후한 말 어지러운 시기에 도교라는 신비주의 종교가 발흥한 것처럼 조선의 17세기는 혼란스럽고 어지러워 백성이 정 붙일 곳이라고는 이러한 신비로운 세계였는지도 모른다.
김명국은 안산이 본이다. 생몰연대는 미상이다. 호는 연담이며 도화서 소속의 화원으로서 요즘으로 치면 국가에서 고용한 화가이다.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경험이 있다. 그림은 전체적으로 정교함보다는 거칠고 호방하다. 중국의 절강성 출신의 대진의 후예들을 이른바 절파 화풍이라 부르는데 김명국이 바로 그 절파 화풍의 화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