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마르크(Franz Marc, 1880~1916)는 1880년 독일 뮌헨에서 태어났다. 아버지(Wilhelm Marc)는 풍경화 전문 화가이고, 어머니(Sophie)는 자유로운 칼뱅 주의자로 이들의 가르침은 그에게 평생 동안 깊은 영향을 주어 靈的인 것에 대한 열망과 희구를 작품 속에 담아냈다. 그는 처음에 가톨릭 신부가 될 생각으로 신학을 공부했으나, 차츰 철학과 문학에 매료되었고 조금씩 회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리하여 1900년, 즉 그의 나이 스무 살 되던 해 완전히 그림으로 관심을 전향하게 된다. 마침내 그는 화가가 되기 위해 뮌헨 미술아카데미(Academy of Fine Arts, Munich)에 들어가 미술교육을 받기 시작한다.
마르크는 1903년 파리를 처음 방문하여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발견하고 이것을 적극 수용하면서 그가 배워왔던 아카데미적인 성향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1907년 다시 파리를 방문했을 때, 고흐와 고갱, 그리고 나비파 화가들의 그림을 접하였고 이들의 자연에 대한 경외와 사랑에 깊이 공감한다. 그리하여 마르크는 자신의 감정을 투영할 수 있고 또, 자신의 내부에 울리는 정신적인 반향을 외부로 표현하기 위해 강렬한 색채를 사용한 그림을 그리게 된다. 동시에 동물 주제에 집중하는데 이는 당시 세계의 혼란스러운 인간군상들의 추악함보다는 오염되지 않은 동물의 순수함 속에서 예술적 영감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그림은 티롤이라는 특정 지역의 풍경을 마르크 특유의 방법으로 묘사한 것이다. 티롤(Tirol)은 오스트리아 서부지역으로서 주도는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인스브루크다. 알프스 산지의 서편 끝자락에 위치한 고산지역으로서 아래로는 이탈리아와 마주하고 서쪽으로는 스위스와 접경을 이루며 북쪽으로는 독일과 마주하고 있다. 자연경관이 아름다워서 이미 오래전부터 관광지로 유명하며, 합스부르크 왕가가 전쟁에 이기고 돌아온 개선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군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1914년 마르크가 동물의 형상에서 진보하여 추상적 이미지로의 전환을 시도한 ‘싸우는 형상들’과 비슷한 시기에 제작한 이 그림은 티롤의 자연 풍광을 독자적으로 해석하여 표현주의적 정서, 즉 주정적 기조의 화풍을 잘 드러내고 있다.
1910년 파울 클레의 친구이기도 한 아우구스트 마케(August Macke)를 만나게 된다. 이 만남은 마케가 가졌던 추상적 색채 의식이 마르크 내부에 잠재되어 있던 색채의 상징성을 자극하고 그것을 새로운 방향으로 나타나게 한 계기가 되었다. 1911년 러시아 출신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알렉세이 폰 야블렌스키(Alexej von Jawlensky)와 함께 ‘신 미술가협회’를 창립했다. 이후 ‘신 미술가협회’가 아카데미화로 노선을 정하자 그곳을 탈퇴하고 칸딘스키와 함께 독일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청 기사파’를 결성하여 예술적으로 획기적인 변화를 맞이한다.
화면 전체에 삼각형으로 구성된 것은 티롤의 산이었을 것이다. 거기에 마르크가 가진 색채감, 이전의 동물적 이미지에서 지속적으로 추구해 온 원색 계열의 강렬함이 덧씌워지고 다시 푸른색, 붉은색, 노란색이 주도하는 마르크적 색채 의식이 더해진다. 구체적 이미지는 분해되어 색상과 결합하고 그 색상은 다시 마르크의 상징성과 연결되어 티롤이 가지고 있는 놀라운 자연환경이 전혀 새로운 풍경으로 재해석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그가 후기 인상주의, 야수파, 오르피즘, 입체주의, 미래파 등 광범위한 미술 양식에 영향을 받았을 뿐 아니라 스스로 독자적인 색채 해석과 구성을 시도한 것으로써, 밝으면서도 대단히 심오한 이미지를 창조해내고 있다.
색채의 사용에 있어 주로 빨강, 노랑, 파랑을 주로 많이 사용하였는데, 빨강은 무겁고 난폭한 물질문명의 색으로, 파랑은 엄격함과 끈기, 정신을 대표하는 남성의 색, 그리고 노랑은 부드러움과 환희, 관능을 대변하는 여성의 색으로 보았다. 그러면서 그는, 그림 전체에 이 세 가지 색을 적절하게 분포시키고, 혹은 섞기도 하면서 그림을 보는 사람들에게 전체적으로 조화와 균형을 느낄 수 있도록 화면을 구성하고 있다. 이를테면 빨강에 노랑을 더하여 부드러움과 관능을 동시에 표현하고, 빨강에 파랑을 섞음으로 엄격함과 끈기로 빨강의 호전성을 경감시키게 된다.
그는 후기로 갈수록 기하학적인 형태와 원색을 통해 생명체 고유의 율동감을 포착해내려 애썼다. 또한 1912년 파리에서 로베르 들로네(Robert Delaunay)와 만난 후에는 그의 영향을 받아 마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처럼 투명한 색들로 조화를 이루는 색채의 향연을 선보였다. 이 그림 티롤은 그러한 마르크의 변화를 그대로 보여준다.
1913년 유럽의 정치적 긴장이 심각해지면서 마르크가 가지려 했던 자연이 인류에게 새로운 활력을 줄 수 있다는 신념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러한 그의 변화는 그의 작품 ‘동물들의 운명(1913)’에 잘 나타나 있는데 다가올 인류의 대재앙(제1차 세계 대전)을 예견하는 듯하다. 그리고 1년 뒤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마르크는 독일군에 입대하여 프랑스 전선으로 떠났고 1916년, 서른여섯이라는 젊은 나이로 전장에서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