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장센
회화의 구성은 작가가 보는 세계의 모습이며 상황이다. 회화로 표현된 세계의 모습은 각 구성품으로 조합된 단일체로서의 세계인 동시에 각 구성품 자체의 개별적 세계이기도 하다. 따라서 회화에서 표현되는 구성품들은 회화의 공간에서 작가 자신의 독특한 이미지를 드러내는 독자적 물건인 동시에 회화 내부에서 각각의 구성품들과 유기적 관계를 가지는 작은 부분으로서 작용을 하기도 한다.
동일 회화 공간을 좌우하는 또 다른 중요한 미장센은 色面이다. 때로 색면은 단면의 이미지를 극복하고 전혀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기도 한다. 색면 공간은 작가의 의도에 따라 단순히 미장센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때로 색면 자체로 작가가 의도하는 독창적인 회화 공간을 구성하기도 한다.
이 작품의 미장센은 대단히 모호하고 동시에 복잡하다. 전체가 통일성을 가지지는 않지만, 비슷하게 연속되는 색면 공간과 패턴으로 가득 차 있다. 畵題(모정-작가 주)가 주는 모티브로 단순 해석하자면 어머니의 소품들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각 소품들에는 놀랍게도 작가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성이 투사되어 있다. 일목요연하게 하나의 주제를 정하고 그것을 해석하는 것으로 이 작품을 읽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 색면
작가는 화면을 다각형으로 분할하고 여러 가지 방법과 다양한 색으로 채색을 했다. 최근의 비구상 계열의 색면 추상이 주는 강렬함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지만 작가의 의도가 다분히 내포된 색면의 구성으로 볼 수 있다. 다각형으로 분할된 것은 마치 우리 전통의 조각보가 주는 뉘앙스를 차용한 듯 보이고, 그 위에 다양한 방법(뿌리기, 바림, 번짐 등)으로 채색했다. 이렇게 구성된 바탕의 이미지는 우리 전통 민화의 느낌을 강렬하게 풍긴다.
여기서 특이한 것은 화면 좌측에 세워진 단청무늬의 기둥이다. 단청의 종류는 참으로 다양하지만 이 작품에서 보이는 단청은 형태로 추정해본다면 錦丹靑 중 화문 단청에 속하지만 채색의 방법은 전통 단청문양과는 다른 매우 독자적인 방법으로 채색되어있다. 또 하나의 의문은 단청이 가지는 공간적 특성이다. 단청을 하는 건물은 일반적으로 사찰, 궁궐 등인데, 그러면 이 회화의 공간은 과연 어디일까? 작가가 의도한 특별하면서도 일반적 관념이 배제된 독특한 공간으로 짐작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한편으로 매우 자의적이기는 하지만 사용된 소품의 이미지와 畵題인 ‘모정’으로 미루어볼 때 단청은 특정 공간의 상징으로 사용된 것이라기보다는 색면의 구성에 필요한 유사 이미지를 통한 색면 공간의 강화 장치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3. 우아미와 비장미의 교차
이 작품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우아함과 동시에 비장미를 느낀다. 일반적으로 미학적 관점의 우아미는 다음과 같이 정의되기도 한다. '우아미'란 자아가 아름다움을 지닌 대상으로부터 미적 감각을 느끼고 그 느낌을 순응하여 받아들이는 데서 오는 감정이다. 예를 들어, 대상이 '자연'이라고 한다면, 자연과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감정을 느끼는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작가가 물아일체의 감정을 느끼는 대상은 다양한 색면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미량의 감정이 스며들어 있는데 그것은 비장미다. 비장미란 나의 의도가 실현되지 못했을 때 나타나는 작가의 슬픔이다. 어쩌면 작가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묘사했을지도 모른다. 이 작품에 나열된 여러 종류의 소품들이 동일 공간에 미장센으로 배치되고 그 하나하나의 물건들이 가진 색면들이 작가가 의도한 회화 공간일 것인데, 그 속으로 가늘게 흐르는 애잔함 혹은 쓸쓸함은 과연 무엇으로부터 기인한 것일까? 어머니와의 작가 자신의 관계에서 오는 알 수 없는 슬픔? 혹은 일찍 여윈 어머니에 대한 짙은 그리움? 하지만 작가는 웬일인지 이 미량의 슬픔을 숨기고 싶었던 모양이다. 다분히 의도된 것으로 추정되는 명도와 채도의 강조는 이 작품으로부터 쉽게 그 미량의 슬픔이 읽히지 않기를 바라는 장치라고 추측해 본다.
4. 각 소품들
골무, 반짇고리, 족두리, 혼례에 쓰이는 나무 기러기, 베갯모, 자수 병풍 한 면, 댕기(제비 부리 댕기로 추정되는) 등은 모두 여성용품들이다.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전통적 환경에서 사용되는 어머니의 용품들이다. 부가적으로 배치된 자수와 약간의 매듭이 그러한 이미지를 더욱 강조한다. 골무와 베갯모는 여러 개를 각각 다르게 표현했는데 여기에는 작가 내면의 풍경을 읽어 낼 수 있는 단서들이 빼곡하게 들어있다. 작가가 자라면서 관찰했던 모든 경험과 기억 속에 존재하는 베갯모와 골무의 문양들이 어머니라는 모티브에 의해 추려진 것이라고 추정된다. 따라서 각 베갯모와 골무는 평면이지만 각각은 시간성을 함축하고 동시에 공간적 특성도 달리 한 여러 환경의 것들이 작가에 의해 한 화면 속에서 불연속적으로 배열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전통 사회에서 결혼식에 사용된 나무 기러기 위에 놀랍게도 동일한 조각의 자수가 덮고 있다. 결혼이라는 의미의 표현을 넘어 작가 내부의 상황이 만들어낸 표현이라고 추측된다. 조금 이상한 것은 족두리의 모양에 비해 채색은 상대적으로 덜 화려하다는 것인데 작품에 그려진 족두리도 결혼식에 사용되는 전통의 족두리와는 사뭇 다른 느낌의 족두리로 보인다. 하지만 형태나 채색의 문제 이전에 이 족두리가 가지는 상징성의 문제에 집중하면, 위 나무 기러기와 아래의 족두리는 하나의 묶음으로 이해될 수 있다. 단지 작가는 관객의 그런 분석을 회피하고 싶었는지 화면 속에서 두 개의 거리를 벌려 두고 있다.
5. 심미안
살필 審(심)의 구성은 집 면(宀)과 차례 번(番)으로 이루어졌다. 番(번)은 분별할 변(釆)과 밭 전(田)으로 구성되었다. 釆(변)은 차례로 난 짐승의 발자국 모양을 본뜬 상형문자인데, 즉 그 발자국을 보고서 어떤 짐승인지 ‘분별하다’는 뜻이 담겨 있다. 田(전)은 밭의 경계를 나타낸 둑의 모양을 본뜬 상형문자로서 농작물을 길러내는 농토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사냥터’라는 뜻도 지니고 있다. 이에 따라 番(번)은 사냥터나 밭(田)에 난 짐승의 발자국(釆), 또는 밭(田)에 씨앗을 뿌리고 지나간 농부의 발자국(釆)이 연이어 난 모양을 본뜬 것으로 ‘차례’라는 뜻이 담겨 있다. 따라서 審(심)의 전체적인 의미는 집안(宀)에 동물이나 혹은 누가 다녀갔는지 곳곳을 차례로(番) 살펴본다는 데서 ‘살피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으며, 그렇게 자기 집안을 살피게 되니 ‘훤히 알다’라는 뜻도 발생하였다.
눈 眼(안)의 구성은 겉으로 보이는 눈의 모양을 형상화한 눈 목(目)과 그칠 간(艮)으로 이루어졌다. 艮(간)은 눈 목(目)과 변화됨을 뜻하는 ‘匕(비 化와 뜻이 통함)’가 어우러져 만들어진 회의 문자다. 즉 간은 눈(目)을 뒤로 돌아보는 사람의 모습을 담은 글자로서 앞에 산이나 언덕이 나타나면 오던 길을 멈추고(艮) 뒤돌아 본다는 의미로서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한계(限界)나 한정(限定)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모두 艮이 쓰였다.) 따라서 眼(안)의 전체적인 의미는 밖으로 드러난 눈동자의 눈(目)뿐만이 아니라 눈 속에 내재한 드러나지 않은 눈 까지도 포함하는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눈을 전담한 의료의 분과를 目(목)과라 하지 않고 眼科(안과)라 한 것이다.
종합해보면 審美眼이란 아름다움을 살펴 찾아내는 안목을 말한다. 내 몸 밖 모든 대상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감지하려면 내 안에 갖추어진 충만한 아름다움을 먼저 느껴야 한다. 골무, 반짇고리, 족두리, 혼례에 쓰이는 나무 기러기, 베갯모, 자수 병풍 한 면, 댕기에서 발견한 사소하지만 깊은 아름다움을 작가 내부의 심미안으로 융화하여 다각형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다양한 색면이 공존하는 한 화면에 옮겨놓으니, 우리는 그로부터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세계와 조우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