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꽁꽁 얼어붙은 세상이 보고 싶어 졌다. 이유야 천 가지, 만 가지도 넘지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온갖 너절한 분쟁과 주장을 한 순간에 얼려버린 뒤, 아주 깊은 바닷속, 혹은 영영 다다를 수 없는 우주 어딘가로 遺棄하고 싶다.
18세기 독일의 어느 화가로부터 그런 세상의 모습을 얼핏 본다. 그는 Caspar David Friedrich이다. 그가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에 그린 Das Eismeer(빙해)에서 그런 세상을 본다.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는 북 독일의 발트해 연안 그라이프스발트에서 1774년 태어났다. 어린 시절 지리적으로 가까운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그림을 배운 뒤 20대 중반 독일 북동부 드레스덴에 정착하여 42세 되던 해 그곳의 미술학교 교수가 되었다.
카스파르의 어린 시절은 매우 불행하였다. 아버지는 엄격한 루터파 신교도였고 어린 그에게 닥친 비극적인 몇 개의 사건들(어머니는 그가 일곱 살일 때 천연두에 걸려 죽었고, 그의 누이는 발진티푸스에 걸려 죽었다. 그리고 13세 되던 해 카스파르가 발트해의 얼음물에 빠졌을 때, 그의 형은 그를 구하려다가 익사하고 말았다.)은 그의 그림 전반에 우울함과 공허함, 그리고 짙은 종교적 이미지를 드리우게 했다.
20세기 되어서야 비로소 그의 그림이 독일 전체에 알려졌고 이로 인해 그에 대한 평가도 새롭게 인식되었다. 그의 그림은 낭만주의(독일) 회화를 대표하는 것으로서 계절의 변화에 대한 내면의 풍경, 이를테면 가을 •겨울 •새벽 •안개 •월광 등의 정경을 독특한 그의 방식으로 표현하였는데 그 중심을 관통하는 느낌은 靜寂(정적)과 憂鬱(우울), 그리고 空虛(공허) 감이다. 대표작 <빙해>는 이러한 것이 집약되어 표현되어 있다.
카스파르는 당시 유럽 전역에 퍼졌던 유물론적 사고의 환멸에서 유래한 자연에 대한 새로운 인식, 즉 인간이 창조한 문명의 반대쪽에 존재하는 ‘신의 창조물로써의 자연’을 표현하고자 했는데 이러한 그의 태도는 그와 동시대에 존재했던 두 명의 위대한 영국 출신의 풍경화가인 터너(J. M. W. Turner) , 그리고 콘스터블(John Constable) 과의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영향은 러시아 이동 전람파에서 ‘숲의 차르’로 불리는 Ivan Shishkin(이반 시슈킨)에 영향을 미쳐 시슈킨의 풍경화에서 느껴지는 고립감 혹은 적요함의 원천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시슈킨의 그림 In the Wild North (1891)는 그러한 느낌이 매우 짙다.
20세기 들어서서 그의 작품에 영감을 받은 사람은 노르웨이 출신의 상징주의 화가 Edvard Munch(에드바르 뭉크)인데 뭉크의 작품 중 The Lonely Ones (1899)는 카스파르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 이후 초현실주의 화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는데 독일 출신의 초현실주의 화가 Max Ernst(막스 에른스트) 벨기에 출신의 René Magritte(르네 마그리트)에 까지 영향을 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