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거리

by 김준식

몇 년 전에도 이런 글을 쓴 기억이 난다. 그때도 오늘 저녁 들리던 소리가 났다.


아파트 근처 어느 주택에서 오늘 밤 굿거리를 하는 모양이다. 이제는 사라진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아주 오랜만에 저 소리를 듣는다. 북을 바닥에 뉘어놓고 그 위에 꽹과리를 엎어 같이 두드리면 저 이상한 소리가 난다. 지난 세기 산골 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꽤나 저 소리를 많이 듣고 자랐다. 그 때나 지금이나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어려움이 있으면 엉뚱한 귀신 탓을 하면서 무당을 불러 굿거리를 하고 귀신의 한을 풀어주어야 한다고 믿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믿고 싶었던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의 기억으로도 굿거리를 한 뒤 그 집의 엄청난 변화(좋아졌다는)를 듣거나 본 기억은 없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굿거리를 하던 굿당과 무당은 미신이라고 치부되어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했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하지만 그들이 하던 모든 과정은 고스란히 종교라는 이름으로 교회 혹은 사찰로 스며들었다. 즉, 여전히 거기 가면 죽은 자들(귀신이라고 불리는), 혹은 죽음을 지배하는 신들에게 한사코 매달려 살아 있는 자들의 욕망을 채워주려는 종교인들이 있다. 예전에 무지랭이 무당들이 하던 일을 이제는 매우 격식을 차리고, 매우 엄숙하게 그리고 우아하게 처리하지만 본질은 굿거리와 달라지지 않았다.(종교의 본질이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거래가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다시 옛날 나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굿거리를 하면 그 집에는 먹을 것이 분명히 있고 다행스럽게도 그 집 식구들 중 나와 동년배나 아니면 잘 아는 형이나 동생이 있으면 나는 내일쯤 분명히 귀신에게 제물로 올렸을 그 음식 중 일부를 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생긴다. 그 기대는 거의 적중하는데 그런 탓에 옆집의 굿거리장단과 무당의 푸닥거리는 우리에게 매우 행복한 연상 작용을 일으키게 된다. 즉 굿거리는 곧 음식이라는 등식을 성립시키고 지금 같은 겨울밤, 그러나 먹을 것이 거의 없던 배고픈 겨울밤에 듣는 그 소리는 어쩌면 내일 아침 무언가 먹을 것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게 한다. 그리고 그 이상한 소리와 장단, 그리고 이상스러운 분위기는 내 머릿속에 중요한 기억으로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정태춘의 노래에도 이런 느낌의 가사가 있다. (얘기 2)


聯想이란 철학적 용어인데 서양철학에서는 이 연상 개념은 칸트 이전 서양철학을 지배했던 경험주의(F. 베이컨, 홉스, 로크, 버클리, 흄으로 전개되는 영국 경험주의)의 핵심 개념이었다. 이 중 흄은 聯想을 유사, 접근, 인과로 구분하는데 굿거리의 소리에서 그 많은 생각을 동시에 떠 올리는 나의 사고 작용을 면밀하게 분석해보면 대충 이 공식에 들어맞는 느낌이다. 어쨌거나 철학적 사고라는 것은 매우 정교하고 동시에 오랜 관찰에서 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시작한 지 채 30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갑자기 소리가 멈췄다. 내 기억으로 굿거리는 밤을 새워하는 것이 원칙이다. 아마도 민원이 들어간 모양이다. 이제는 귀신보다 민원이 무서운 시절이 되었다. 하기야 내기 사는 동네처럼 아파트가 있는 지역의 주택에서 하는 굿거리 소리는 가까이 있는 아파트 전체를 울리기 때문에 누군가는 아마도 민원을 반드시 넣었으리라. 21세기 이 문명의 시대에 굿거리를 하기에는 이 도시가 너무나 웃기는 장소 아닌가?



표지 그림은 장승업의 '삼인문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