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망

by 김준식

2019년 2월 22일 오후 4시 01분을 막 넘기고 있다. 미세 먼지가 천지에 가득하고 아직은 바람이 조금 차다. 책상 위의 따뜻한 물 한 잔을 두고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본다.


50대 후반, 생각은 이미 무디어졌다. 예리함을 잃은 생각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생각을 이리저리 굴리며 혹은 이것저것을 떠올리며 이분법, 또는 다양화의 강박을 느끼며 오후를 소진하고 있다.


뉴스를 보면 그래도 한 때는 이런저런 덮개와 분장으로 감추는 흉내라도 내더니 이제는 아예 감추지 않아도 된다는 듯이 미친 얼굴을 드러내 놓고 움직이는 정치, 사회 문화적 현상 속에서 나는, 대책 없이 그저 미끄러지듯 수면 아래로 내려앉는다.


이것이 나의 어중간하고 불투명하며 쇠락해가는 중년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할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지금 나의 이 불분명하고 어정쩡한 태도는 분명 내가 살아온 지난날에 대한 가벼운 배신이거나 또는 외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찌할 것인가? 이미 나는 한 없이 무디어졌고 나의 빛나는 이상은 탈색되었고(어쩌면 사라져 버렸는지도) 나의 호흡은 이제 탁해졌다. 참 초라한 변명이다.


참으로 험난한 길을 어찌어찌하여 도착해보니 이곳이 아니다는 철 지난 유머처럼, 지금 우리의 상황이 그와 비슷하다. 딱히 무엇이 얼마나 잘못되었다는 기준조차 희미해진 시대가 지금이다. 이제 돌아갈 곳도, 돌아가고 싶은 시간도 없는 낭패감만이 우리에게 있다. 하여 그 낭패감으로부터 비롯되는 무기력의 공기가 우리를 감싸고 있을 뿐이다.


Richard Strauss - Also Sprach Zarathustra (1/4)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조로아스터교의 경전 젠드아베스타에 의하면 선신 아후라 마즈다(광명, 불)와 악신 아리만(어둠)이 싸워 선신 아후라 마즈다가 마침내 이기게 된다. 따라서 당연한 결과로 이들이 섬기는 것이 선신 아후라 마즈다의 상징 불이다. 그래서 배화교라고도 부른다. 참고로 아후라 마즈다의 "아후라(Ahura)"는 "빛"을 의미하며, "마즈다(Mazda)"는 지혜를 뜻한다. 인도의 베다와 많은 유사점이 있다.


어쨌거나 이 조로아스터의 영어식 발음이 자라투스트라다.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의 문학적 철학서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초인(Übermensch)에 대한 니체의 아포리즘이다. 많은 비유로 가득한 이 책에서 ‘신은 죽었다’라는 자라투스트라의 이야기만 자주 인용되는데 사실 은유적 표현이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파악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는 프란츠 슈트라우스의 아들로서 이 니체의 책에서 영감을 받아 교향시를 작곡하는데, 그 작품이 바로 교향시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이다. 이 교향시는 악장 구분 없이 총 9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약 35분간 끊김 없이 연주된다. 그중 가장 유명한 부분을 이 흐린 오후에 듣는다.


첫 부분 금관악기와 타악기가 만들어내는 소리의 場은 마치 우리가 음악으로 초인(Übermensch)을 만나는 듯한 착각을 준다. 슈트라우스의 천재성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니힐리즘(동양의 空사상과는 약간의 거리가 있는)의 음악적 표현이라는 말이 빈말이 아니다. 결국 無로 회귀하는 모든 존재의 본질에 대한 음악적 표현을 슈트라우스는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ETveS23djX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