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준식 Sep 20. 2016

L'Énigme, 1871.

욕망을 비움

L'Énigme, 1871. Oil on canvas,130cmⅹ195.5cm

알레고리적 의미를 가지는 

Paul Gustave Doré(폴 구스타브 도레)의 L'Énigme(수수께끼) 1871


Paul Gustave Doré(구스타브 도레, 1832~1883)는현재 독일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Strasbourg(스트라스부르) 출신인데 이 도시 Strasbourg는 독일과 프랑스의 오랜 반목의 역사를 품고 있는 알자스 로렌 지방의 주도(州都)로서 독일과 프랑스의 문화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도레는 어린 시절부터 천재로 인정받았는데 15세 되던 해 Le Journal pourrire (르 주르날 푸르 리르– 직역하자면 웃음에 대한 신문이란 뜻)에 캐리커쳐를 연재하게 되고 이듬해, 즉 16세 되던 해에는 당시 프랑스에서 어린 나이에 가장 돈을 많이 버는 삽화가가 된다.


Theophile Gautier(테오필 고티에, 프랑스 낭만주의 작가)는 도레를 가리켜 '천재소년'이라고 불렀을 정도로 당시 그의 작품은 프랑스를 놀라게 했다. 이러한 명성에 힘 입어 도레는 François Rabelais(프랑수아 라블레), Honoré de Balzac(오노레 드 발자크), John Milton(존 밀턴), 르네상스의 위대한 시인 Dante Alighieri(단테 알리기에리), Sir. George Gordon Byron(조지 바이런 경), Edgar Allan Poe(에드거 앨런 포) 등 불멸의 문학 작품에 삽화 작업을 담당하게 된다. 


L'Énigme(르 에니그마, 수수께끼)라는 이 작품은 도레가 39세 되던 해에 그려지는데 당시 프랑스는 1870년 보불전쟁 패배의 짙은 그림자가 프랑스 사회에 드리워져 있었던 시기였다. 뿐만 아니라 이 그림이 그려진 1871년에는 파리 코뮌(프랑스의 공산주의적 민중혁명)이 발발하여 민중들의 삶은 매우 피폐해져 있던 시기였다.


스핑크스가 수수께끼를 내고 그것을 맞추지 못하면 목숨을 빼앗는 신화를 모티브를 바탕으로, 당시 파리 코뮌의 폭동 때문에 불타고 있는 파리 시의 모습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보불 전쟁에 패배한 암울한 현실과 정치적 권력다툼에 내팽개쳐진 민중의 삶을, 부서진 대포와 몇 구의 시체들을 짙은 회색과 청색을 주조로 하여 어둡고 칙칙하게 표현하고 있다. 짙은 청색은 좌절과 절망, 그리고 죽음을 표현하며 회색은 동시에 불투명과 혼란, 그리고 부패와 고통의 상징으로 표현하고 있다.


정치 이념을 형상화한 스핑크스와 그 이념의 희생양이 될 운명에 처한 민중들의 순결한 정신을 날개 달린 천사(하지만 고통스러운 상황에 있는)로 표현하여 알레고리적 의미를 가지게 한다. 천재적 영감을 가진 도레는 이 그림을 통해 인류 역사 전체를 지배하는 "탐욕의 권력"이 자행하는 부조리를 고발하고 있다.




장자 이야기


욕망을 비움


안회가 스승 공자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敢問心齋(감문심재) : "감히 마음의 재계를 묻습니다" 

仲尼曰(중니왈) : 중니가 대답했다. 

若一志(약일지) : " 마음을 하나로 모아 

无聽之以耳而聽之以心(무청지이이이청지이심) : 귀로 소리를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듣게. 

无聽之以心而聽之以氣(무청지이심이청지이기) : 또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운으로 듣게. 

耳止於聽(이지어청) : 귀는 소리를 들을 뿐이고, 

心止於符(심지어부) : 마음은 밖에서 들어오는 것에 맞추어 깨달을 뿐이지만, 

氣也者(기야자) : 기운은 

虛而待物者也(허이대물자야) : 비어 있으므로 무엇이나 그대로 받아들이지. 

唯道集虛(유도집허) : 진리는 오직 비어있는 곳에 모이는 법이지. 

虛者心齋也(허자심재야) : 비어있음이 바로 마음의 재계라네." 



안회가 여러 가지로 자신의 상태가 심재, 즉 재계하고 있는 상태인지 공자에게 묻는다. 그러나 그때마다 공자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하여 안회는 공자에게 묻는다. “저로서는 더 이상 모르겠습니다. 부디 그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약간의 짜증이 섞인 말이다. 번번이 아니다고 퇴자를 놓으니 안회의 마음도 이해가 간다.


중니가 말했다. “심재(心齋)하라!" 아이고 겨우 이 이야기뿐인가? 안회가 응수한다. “부디 심재에 대해 가르쳐 주십시오” 중니가 대답했다. 


“너는 잡념을 없애고 마음을 통일하라.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듣도록 하며,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氣)로 듣도록 하라. 귀는 소리를 들을 뿐이고 마음은 밖에서 들어온 것에 맞추어 깨달을 뿐이지만 기란 공허하여 무엇이나 다 받아들인다. 참된 도는 오직 (허)虛속에 모인다. 이 허가 바로 심재이다” (위 한문) 뭐 사실 그 소리가 그 소리인데 어라 역시 안회다. 스승이 까라면 까는 시늉을 하는 안회다.


안회는 말한다. “제가 아직 心齋를 못할 때는 정말로 제 속에 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心齋를 하게 되자 비로소 제 속에 내가 있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虛라 할 수 있을까요?” 아부 작렬이다. 그러니 하는 수 없이 공자가 대답했다. “충분하다!”


비우라는 이야기에 매우 어렵고 힘들게 도달한 안회가 정말로 비웠는지는 위의 짧은 고백만으로는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누구든 무엇이든 비워야 된다는 것은 진리인지도 모른다. 뭐든 비워야 다시 차오를 수 있고 비워야 어둠으로부터 환한 빛을 맞이 할 수 있다.

  

장자 인간세

작가의 이전글 L'Atelierde la rue ..., 187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