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otodienneté(일상성)
1
뉴스를 보니 참으로 어이없는 장면이 나온다. 지금 정부를 좌파라고 부른다. 그것도 극좌란다. 어이없다. 저런 병신육갑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문재인 정부가 좌파라는 증거는 거의 없다. 오히려 중도 우파 노선에 가깝다. 좀 더 정확하게는 시장주의를 충실히 따르고 있으며 노동자보다는 사용자 쪽에 더 가까운 정부다. 그런 정부를 두고 좌파라고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좌파라고 떠들어대는 것은 목표가 다른 곳에 있다. 정치적 이권을 위해 좌우 이데올로기를 이용하려는 아주 천박한 아이디어인데 어쩐 일인지 사람들은 그 말에 대충 수긍하거나 혹은 모른 체한다. 참 미칠 노릇이다. 내년으로 다가온 국회의원 선거와 그다음에 이어질 대통령 선거를 유리하게 치르겠다는 셈법으로 저 난리를 피우는 모양인데 저 불한당들을 어찌해야 좋을지 분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좌파 논리는 기초적인 것에서부터 노동자 민중들의 삶과 연결되어 있어야 좌파다. 병신들아! 지금 좌파를 외치는 너희들의 본색은 친일, 친미 매국 세력의 잔재들이며 이 땅의 민중들의 고혈을 빨아먹은 구 한말 탐관오리의 후예들이다. 또 시대가 변할 때마다 옷을 갈아입은 기회주의자들이며 좋은 머리로 변절과 변절을 거듭해온 모리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한 너희들이 감히 좌파라는 말을 입에 담는가! 문재인 정부는 전교조를 아직도 법 밖에 두고 있으니 어찌 좌파일 수 있는가!
2.
함양에 가 보니 올해 벼농사를 위해 논에 물을 댄다. 논에 물을 대고 못자리를 만들 것이다. 이로써 올해 벼농사가 시작된 셈이다. 요 며칠 쌀쌀했던 날씨 탓에 작년보다 조금 늦어진 듯 생각된다. 이처럼 농사는 정확하게 시기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과정에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문명이 시작된 이래 자연의 법칙에 따라 유지해 왔던 인류의 삶이 급격하게 달라진 것은 18세기 영국에서 일어난 산업혁명이었다.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가장 필요했던 것은 노동력이었다. 생산을 위해 기계가 필요했던 인간들이 이제는 생산을 위해 창조했던 기계에 의해 운용되는 인간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인간들은 기계와 생산품을 독점한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마치 기계처럼 일정 시간의 노동과 휴식의 과정을 부여받았는데 이것은 좀 더 효율적인 생산 증대를 위한 것으로서 인간의 삶과는 무관한 일련의 과정이었다. 즉 근대의 일상(日常)이 탄생한 것이다.
즉 일상이란 사전적으로는 본능을 충족시키기 위한 구조화된 삶의 과정으로 풀이되지만 엄밀하게는 산업화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셈이다. 하루를 24시간으로 구분 지은 것은 이집트 시대로 올라간다. 그리고 중세 유럽에서 고리대금업을 위한 시계의 정밀화에 따라 24시간제는 거의 굳어졌고 현재는 인류 공통이 되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농경 사회에서 24시간제는 큰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낮과 밤의 구분만으로도 충분히 유지되는 것이 농경사회의 특징이다.
24시간제가 필요한 사회는 농경사회가 아니라 기계에 의해 끝없이 생산품이 쏟아져 나오는 산업사회로서 시간을 정해 놓지 않으면 도저히 쉴 수 없는 사람들이 궁여지책으로 만든 것이 바로 하루 8시간 노동 제이다. 즉 하루 24시간을 3 등분하여 8시간은 자고 8시간은 먹고 마시고 쉬며 또 8시간은 노동하는 것으로 만들었다. 무엇을 위한 구분인가는 자명하다. 오로지 인간을 생산의 입장에서만 보는 지극히 비 인간적인 시간 구분이 아닐 수 없다.
20세기 초 마르틴 하이데거는 일상의 의미를 그의 철학적 방법론인 현상학적 방법론을 통해 재해석하였는데 그에 의해 만들어진 개념이 바로 일상성(Alltäglichkeit)이다. 그러나 하이데거의 일상성은 불가지론에 가까운 내적 의미의 인간 실존에 대한 공리적 규명으로써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에 대한 심화 개념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즉, 하이데거가 말하는 일상성은 인류 보편의 역사에 항상 존재해 왔던 인간 실존적 일상의 문제를 철학적으로 분석해 내려는 시도였다. 일상에 대한 매우 현실적인 분석은 1961년 프랑스의 사회주의 철학자인 앙리 르페브르가 쓴 『 일상성에 대한 비판(The Critique of Everyday Life) 1947』이라는 책에서였다.
일상성은 우선 대단히 남루하다. 지루하게 주어지는 지속적인 임무 그리고 모욕적인 인간관계, 언제나 반복되는 사물들 혹은 상품들과의 관계, 언제나 해결되지 않는 돈이나 욕구와의 관계 등등. 요컨대 궁핍의 존속이고, 부족함의 연장이며, 박탈, 억압, 채워지지 않는 욕망, 비천한 인생의 반복이다. 비참하다.
그러나 일상성에는 다만 비참함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신박한 기쁨과 미량이지만 쾌락도 들어 있다. 아인슈타인의 위대한 발견도 지루한 어느 일상의 하루 중에서였고, 위대한 예술작품이 만들어지는 것도 역시 권태로운 일상 속이다.
그러나 일상성의 가장 위대하고 동시에 두려운 측면은 그 완강한 지속성이다. 영원히 지속되는 인간의 삶처럼 일상성은 땅에 뿌리박은 채 우리가 숨을 멈추는 그 순간까지 영원히 지속된다. 일상에서 탈출하여 여행을 다녀와도, 일상의 지루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 어떤 짓을 벌여도 그것이 끝나는 순간 우리에게 일상은 집요하게 계속된다.
3.
너무나도 비겁하고, 너무나도 형편없는 정치현실은 이미 우리에게 일상이 되었다. 거부할 수도 거절할 수도 없는 천박하고 가증스러운 정치의 일상이 오늘도 집요하게 유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