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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여행기(2)

사카라에 내리는 비 (1)

by 김준식

2. Sakkara에 내리는 비(1)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 내린 것은 어둠이 깔린 시간이었다. 공항은 좁았다. 전혀 알 수 없는 아랍문자가 온통 보이는 것으로 보아 분명 나는 이집트에 와 있는 모양이다. 공항을 빠져나오니 우리 일행을 기다리는 버스가 있다. 독일 산 벤츠 버스가 수십 대 줄지어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면서 여기서도 서양 자본은 이미 깊숙하게 스며들어있는 모양이다.


한국시간으로 토요일 오후에 비행기를 탔는데 여기는 토요일 밤이다. 7시간의 시차 덕을 본 것 같지만 가는 날 다시 7시간 손해를 볼 예정이니 어차피 부여된 시간의 총량은 같다. 둥근 지구에 사는 묘한 시간의 작용이다. 숙소로 향하면서 보는 밤의 카이로는 황량했다. 계절상 우리와 같은 겨울인지라 온도는 20도를 넘지 않아 한국에서 입고 온 얇은 파카가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밤 시간의 카이로의 자세한 풍경을 보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다행이었다.


아프리카 중부 빅토리아 폭포에서 발원한 나일강이 두 갈래로 갈라졌다 다시 합류하여 이집트로 흐르는데 에티오피아의 홍수와 고원지대의 눈 녹은 물이 4월부터 더해져 이집트는 10월까지 나일강의 범람이 최고조에 이른다. 평상시 수면보다 약 7~80m 정도나 수위가 올라간다. 나일 주위에 있는 모든 땅이 이 시기에 잠긴다. 수 만년 동안 지속된 이 범람의 흔적은 나일 주변의 모든 산과 건축물에 뚜렷한 흔적을 남겨 놓았다. 1900년대 초반 영국에 의해 건설된 아스완 댐에 의해 그나마 조금 해결이 되었지만 낫세르가 집권하여 소련과 합작하여 세운 아스완 하이 댐이 세워진 이후로 하류의 홍수는 거의 잦아들었다.


어쨌거나 이집트 2일째 아침을 맞이했다.


이집트 고왕국(기원전 2686년 ~ 기원전 2181년)이 기원전 2200년까지 약 400년간 수도로 했던 멤피스(콥트어로는 멘페였으며, 멤피스라는 이름은 이것의 그리스식 변형)가 이집트 여행의 첫 행선지였다. 위대한 역사가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기원전 3000년경 파라오 메네스에 의해 창건된 이 오래되고 낡은 도시의 첫인상은 남루함이었다. 襤褸(남루)는 잘 알다시피 옷 따위가 낡아 해지고 차림새가 너저분하다는 뜻이다. 딱 그랬다. 아침나절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를 지나면서 본 풍경은 쓰레기와 폐수, 뿌연 연무와 먼지, 그리고 퀭한 눈빛의 사람들이었다. 인구 5천만이 모여 사는 거대도시 카이로는 낡은 차들이 매연을 뿜어대는 쓰레기 더미의 도시였다. 몇 해 전 일어났던 혁명의 상처인지 가계들은 모두 철시했거나 비어있고 먼지를 덮어쓴 자동차들이 아무렇게나 주차된 거리를 오래된 마차가 달리고 있었다. 무바라크의 독재가 위대한 태양의 나라 이집트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멤피스뿐만 아니라 이집트 어디를 파 보아도 히에로글리프가 쓰인 고대의 유물이 나온다 한다. 멤피스도 그렇게 발굴된 곳이라고 한다. 4천 년이 넘은 고대 유물을 노천에 그냥 세워 놓았다. 하기야 비가 내리지 않으니(연평균 강수량 약 30mm) 우리나라와는 환경이 다르다.

람세스 2세2.PNG

멤피스에서 발굴된 것은 고왕국 시절의 유물과 그 뒤 람세스 2세의 유물이 많이 출토되었다. 유적지 한편에 서 있는 람세스 2세의 석상과 스핑크스, 히에로글리프가 새겨진 몇 개의 비석이 멤피스 유적의 전부였지만 그 정교함과 거대함에 약간의 의심 그리고 놀라움이 교차했다. 지금으로부터 3천 년 전은, 우리가 배운 시대 구분으로 말하자면 초기 청동기 시대이거나 그 이전인데 단단한 돌에 새겨진 너무나 정교한 조각과 형상 앞에서 우리의 상식은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고 만다.

람세스 2세.PNG
람세스 2세3.PNG

박물관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곤란해 보이는 창고에 거대한 람세스 2세의 와상이 전시되어있었다. 이렇게 거대한 돌을 이리저리 옮긴 것도 놀라운데 거기에 매우 정교한 조각과 히에로글리프를 새겨 정확한 연대를 표시했으니 이집트 고대인들 특히 지금으로부터 3천 년 전 사람들이 했으리라고는 믿을 수 없는 유물을 믿어야 하는 현실 앞에서 약간의 현기증마저 느꼈다.


거대한 람세스 2세의 와상은 정강이 밑으로는 훼손이 되어 세울 수 없어 뉘어 놓은 것인데 어림 잡아 전체 크기는 20m는 넘어 보였다. 석질은 붉은 사암 종류인데 92세까지 살다가 간 살아있는 신이자 파라오였던 람세스 2세의 젊고 패기 있는 모습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어깨에 새겨놓은 Cartouche(카르투슈-왕의 이름을 둥근 모서리의 사각형 속에 새겨놓은 것을 이렇게 부른다.)는 그가 람세스 2세임을 분명하게 한다.

멤피스 유적의 풍경.PNG

멤피스 유적지 곳곳은 여전히 발굴 중이다. 어쩌면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지금도 땅 속에 묻힌 유물들에 비하면 아주 일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늘이 흐려진다. 다음 행선지는 최초의 피라미드가 있는 Sakkara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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