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라에 내리는 비(2)
고고학(Archaeology)적 관점에서 이집트는 확실히 연구대상의 寶庫다. 고고학의 주요 연구 대상인 물질적 자료(유물)가 많기 때문이다. B.C. 3000년경부터 만들어진 유물들이 지속적으로 발굴되면서 시대별 문화 양상의 변화를 알아내기에 너무나 적합한 곳이다. 가끔씩 공룡뼈를 연구하는 고생물학과 고고학을 혼동하기도 한다.
멤피스를 떠난 버스 차창으로 카이로 외곽의 모습이 여과 없이 보인다. 그들의 곤고한 삶의 모습은 여행자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오로지 나의 입장 일지도 모른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그들은 그들의 삶이 곤고한지 혹은 즐거운지 대해 전혀 모를 수 있다. 다만 일상을 유지할 뿐이다. 마치 대한민국에서 나의 삶처럼.
도시의 외관이 남루한 것은 먼지 때문이다. 비가 오지 않으니 오래된 먼지가 씻기지 않는다. 먼지가 쌓인 외벽은 황토색 일색이다. 퇴락함과 황량함이 그대로 느껴지지만 의외로 거기 있는 사람들의 표정에서는 여유가 느껴진다. 급속도로 이루어진 우리나라의 근대화 속에서 살아온 나의 삶에서 기어 나오는 불편함과 불만들이 저들의 표정 앞에서 다만 머쓱해질 뿐이다.
사카라(Sakkara, Saqqarah)는 멤피스의 네크로폴리스(죽은 자들의 도시, 즉 무덤)에 해당하는 지역으로서 최초 형태의 피라미드라고 추정되는 조세르의 피라미드와 열 주형 신전이 있는 곳이다. 네크로폴리스라는 이름은 그리스어이지만 그 최초의 형태는 이집트에서 유래되었다는 학설이 지배적이다. 고대인들이 아크로폴리스(산 자들의 도시), 네크로폴리스(죽은 자 들의 도시), 헬리오폴리스(신들의 도시)로 구분한 것을 보면 그들이나 우리나 모두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고뇌하고 성찰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세르(Djoser, 재위: 기원전 2668년~기원전 2649년)는 이집트 제3왕조의 두 번째 파라오이다. 그가 만들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피라미드는 초기 형태로 계단식이다. 아마도 가장 만들기가 용이한 형태가 계단식일 것이라고 고고학자들은 추정하지만 실제 피라미드를 보니 지금부터 4600년 전에 만들었을 것이라고 보기에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크고 기하학적 비례가 완벽했다. 도대체 이들은 지금으로부터 4600년 전에 어떻게 이런 구조물을 만들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에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뿐만 아니라 초기 형태의 열 주식 건물의 섬록암 기둥들의 가공 면을 보면서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생경함과 놀라움이 나를 전율케 했다.
비가 내리지 않는다고 우산은 아예 준비조차 하지 않았는데 사카라의 조세르 피라미드를 보고 있는 순간 비가 내린다. 관광객을 이끌고 다니는 어떤 현지 가이드는 하늘을 향해 기도를 올리는 시늉을 한다. 그들에게 비는 그런 존재인 모양인데 우리는 비를 맞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공기도 좋지 않고 먼지가 많으니 아마도 빗속에 많은 먼지들이 녹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우가 늘 우리에게는 있다. 자연에 대한 참담한 사태인식이 아닐 수 없다.
사막 위에 서 있는 조세르 파라오의 저 계단식 피라미드는 그의 재상 임호테프가 설계한 것으로, 완전히 돌로 된 세계 최초의 석조 건물로 인정되고 있다. 처음에는 조그마한 무덤으로 시작하였으나, 몇 번의 증축을 거쳐 62미터에 이르는 현재의 계단식 피라미드가 되었다. 기단부는 109 x 125 미터에 달하며, 주변에서 엄청난 양의 유물들이 발굴되었다.
100미터가 넘는 기단부를 한 바퀴 돌면서 느낀 것은 단지 거대함 만이 아니라 매우 정교한 측량이 뒤따르지 않으면 불가능한 건축물이라는 생각에 도달했다. 당시 측량의 방법을 상상할 수는 없지만 100미터의 길이를 재면서 비뚤어지지 않아야 되는데 이것은 각도와 길이에 대한 엄정한 통제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 기술이다. A4 종이를 접으면서도 우리는 비뚤게 접는 것이 보통인데 지표면에서 100미터나 멀리 있는 정확한 지점을 연결하고 그 땅을 평평하게 만들어 높이 60미터나 쌓아 올렸다는 것은 기적이나 다름없다. 요즘 이런 시설을 만들기 위해서는 트렌싯(transit)을 써야만 하는데 당시 이런 기계가 있을 리 만무하고……지표면에 조금이라도 굴곡이 있었다면 4600년이 지난 지금쯤은 무너져 흔적도 없을 것인데….
임호테프(임호텝, Imhotep BC 2650 ~ BC 2600)는 학자이며 헬리오폴리스의 태양신 라(Ra)를 섬기는 대 제사장이었다. 이집트 피라미드의 역사상 건축가로 거론된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공학자이자 내과의사, 그리고 건축학자로 묘사되고 있다. 사후, 이집트에서는 건축과 공학의 신으로 추앙받았다. 이렇게 위대한 임호테프는 몇 년 전 할리우드 영화 때문에 그 명예가 실추된 인물이다. 영화 ‘미이라’에서의 임호테프는 세티 1세 시대의 최고 제사장이었고 또 세티 1세의 아내인 아낙수나문을 빼앗고 세티 1세를 죽인다고 나온다. 그러나 세티 1세는 거의 천 년이나 뒤에 이어지는 제19왕조의 2번째 왕이고 임호테프가 활동했던 시대는 제3왕조 조세르 왕 때 재상으로 있었다. 할리우드는 명예를 회복시키는 영화를 다시 제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