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라디오 시사 인터뷰 프로그램을 들으면서 출근하다가 가끔씩 출연자들의 멍청한 이야기를 들을 때, 혹은 도저히 일어나지 말아야 할 사건이 일어났을 때 분개하며 학교에 도착한 적이 가끔씩 있다. 오늘 아침 인터뷰 중에 현재 논의되고 있는 재난 소득(뭐라 부르던 상관없다.)에 대한 모 인사의 표현 중에 서울시에서 제공할 재난 소득의 기준에 대해 ‘계층 불평등’이라는 용어를 들었다. 그렇게 이야기 한 사람은 야당 국회의원이라는데 참 화가 났다.
1943년, 영국의 사회운동가이자 자유주의 정치가인 줄리엣 라이스-윌리엄스(Juliet Rhys-Williams)는 「기대하는 어떤 것. 새로운 사회계약을 위한 제안(Something to Look Forward To. A Suggestion for a New Social Contract)」이라는 글에서 보편적 성격의 수당(즉, 기본소득)을 제안한다. 이는 오늘날‘ 실업의 덫’과‘ 빈곤의 덫’처럼 복지제도가 오히려 노동 유인을 약화시킨다는 인식에 기초한 것이다.
이 이야기를 1976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Milton Friedman(밀턴 프리드먼)은 결을 약간 달리하여 '부(負)의 소득세(Negative income tax)'라는 말로 대체하여 이야기하면서 다시 관심을 모았고 현재의 기본소득제와 관련된 논의의 시작점에 위치해 있다.
코로나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당장 현금을 지급해야 한다. 이것은 현재 널리 공유되어 있는 인식이다. 부정할 근거도 이유도 별로 없다. 그러나 문제는 ‘누구에게’라는 문제에서 견해가 분화되기 시작한다. 국가 재정이 넉넉하여 전 국민에게 모두 나누어 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재정이 넉넉하지 못하니 취약계층을 선별하여 우선적으로 지급하자는 것이다. 그걸 두고 계층 차별이라는 말을 하는 국회의원의 뇌 구조를 알고 싶다. 힘든 사람에게 먼저 주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차별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상대적 평등이자 그들이 늘 주장하는 자유주의(liberalism)의 근간이다. 위에서 말한 프리드먼 역시 신자유주의자임을 알아야 한다.
지난 2016년 6월 25일 스위스에서는 평시 기본소득 도입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시행되었다. 발의자들이 상정한 기본소득의 규모는 매우 야심적이었다. 성인 한 사람에 매월 2500 스위스프랑(약 282만 원)을 지급하는 프로젝트(어린이는 625 스위스프랑)였는데, 이 나라 1인당 GDP의 40~50%(평가 기준에 따라 차이 발생)에 달하는 규모다. 결과적으로, 23% 대 77%로 부결되었다. 당시 발의자는 좌파 정당이었다. 급진적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현재 코로나가 점령한 전 세계가 이 기본소득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하루라도 빨리 즉시 재난 소득이든 기본소득이든 지급해야 한다. 코로나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단돈 만원도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