繞路說禪 (요로설선) 에둘러 선을 말함.
大慧焚碧巖*(대혜분벽암) 대혜는 벽암을 태웠고,
慧可切自肱*(혜가절자굉) 혜가는 스스로 팔뚝을 잘랐네.
眞等寂停水*(진등적정수) 진리는 멈춰 고요해 진 물과 같은데,
噴雪開潔微*(분설개결미) 백정화는 깨끗하게 피었구나.
2020년 5월 29일 오전, 학교 뒤편 숲. 白丁花가 단정하게 피었다. 백정화는 우리 말로는 두메 별꽃이라 불리는데 썩 어울리는 이름 같지는 않다. 한자로는 六月雪, 噴雪 이라 불리는데 아마도 흰 색의 작은 꽃이 나무에 가득 피어 이 계절(5~6월)에 마치 눈 내린 나무처럼 보여서 그렇게 부르는 된 모양이다. 백정화를 보니 문득 깨달음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경지인지 상상도 가지 않지만 오늘 아침 숲 어귀에서 문득 백정화를 본 이런 느낌의 최고치가 아닐까 싶다.
* 大慧(대혜, 1089~1163)는 중국 송나라의 승려로 당시 만연했던 文字禪을 경계하며 그의 스승 원오선사께서 지은 벽암록을 불태워버렸다. 문자선이란 언어, 문자 풀이나 해석으로 선을 이해하는 것으로서 이치나 논리, 알음 알이로 이해하는 선을 말한다. 일종의 문자유희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다고 대혜는 생각하여 그의 스승이 남겨놓은 벽암록을 불태우는 매우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禪의 방향을 정립하고자 했다. 이렇게 해서 등장한 수도 방법이 오늘날 한국 선 불교의 큰 맥인 看話禪(간화선)이다.
* 慧可(혜가, 487년~593년)는 수나라의 선승이며 달마를 이은 禪宗(선종)의 2대조이다. 520년 숭산 소림사를 찾아 달마의 제자가 되어 이 곳에서 8년 동안 수도에 정진하였다. 처음에 달마를 찾았을 때 쉽사리 입실을 허락 받지 못하자 무릎이 빠질 만큼 쌓인 눈 속에 서서 밤을 새웠고 마침내 자기의 팔을 잘라 냄으로써 구도를 위하여는 신명을 아끼지 않는 정신을 보여 마침내 달마의 허락을 받았다는 전설은 유명하다.
* 『장자』에는 물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덕충부’에서 이야기하기를 ‘물이 평평하게 정지해 있는 것이야말로 물이 가지는 최고의 경지다.’ 라고 했고, ‘천도’에도 ‘물이 고요하면 모든 것을 비추어 기준이 된다.’ 라고 했다. 이것은 물이 가지는 속성을 진리와 연결시키려는 ‘장자’적 방법론이기도 한데 동 서양을 막론하고 물과 진리는 자주 비유되곤 한다.
* 噴雪, 六月雪 모두 백정화의 다른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