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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Jul 03. 2020

2020년의 반, '각의' 서문을 쓰다.

2020년의 반이 끝나는 날, ‘刻意’의 서문을 쓴다.


초침이 없는 시계는 잠시 보면 정지한 듯 보인다. 그러나 조금 지나 보면 분명 시계는 가고 있다. 하늘에 구름이 한 조각 떠 있다. 멈춰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좀 지나 쳐다보면 이미 이전 모습은 아니다. 어쩌면 사라져 버리고 없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이와 같다. 잠시도 변화를 멈추지 않는 시, 공간 속에 우리는 지금, 살고 있다.


사실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은 착각일 수도 있다. 어쩌면 시간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만들어 낸 것인데도 불구하고 시간이라는 개념은 여전히 늘 완벽하지 못한 것을 보면 이런 의심은 대단히 합리적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그 시간과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 우주적 질서이기도 한 변화 혹은(알 수 없는 방향 이기는 하지만) 진행의 존재이다. 단언할 수는 없지만 우리의 변화는 결코 시간의 작용이 아니다. 단지 변화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변화한다. 멈춰서는 것은 곧 종결이다. 종결의 다른 이름은 죽음이다. 따라서 우리는 종결되거나 또는 계속 변화할 수밖에 없다. 


범위를 ‘나’로 좁혀 보자. 비록 나는 내 몸의 주인이지만 내 몸을 주체적으로 제어할 수 없다. 즉, 내 의지와 무관하게 내 몸은 변화한다. 심지어 나의 시작과 종결의 그 어떤 부분에도 내 의지는 작용하지 않는다. 다만 나의 시작과 종결 사이 존재하는 과정에 나의 의지가 약간 개입하는데, 사실 이것조차도 불분명해서 나의 의지인지, 아니면 의지인 것처럼 느껴지는지 모호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것이 이를 테면 나의 삶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의 삶은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시작하여 역시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종결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과정 자체도 의지에 의해 이루어지는 일은 사실 별로 없거나 거의 없다. 실제로 우리 삶의 과정은 수많은 우연과 필연의 조합일 뿐, 여기에 우리의 의지가 개입할 여지는 거의 없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의지가 개입될 것이라고 강력하게 믿고 있으며 그 믿음은 때로 착각처럼 또는 환영처럼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사실 이 모든 것이 거대한 착각일 수 있다. 


2020년, 나의 책 제목은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이없게 ‘刻意’라고 했다.  ‘뜻을 새긴다’는 의미이다. 즉 (대상이나 목적은 분명하지 않지만) 나의 의지를 내 삶에 새겨보겠다는 것인데 처음부터 가당치 않아 보이기는 했다. 


『장자』 제15편이 ‘刻意’다. 『장자』 각의의 내용은 사실 내가 쓴 글들과 거의 무관하다. (희미하게 연결된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오로지 그 문자적 의미만을 가져와서 2020년에는 나의 뜻, 즉 나의 의지를 내 삶에 새겨보고자 한다는 의미로 썼는데, 한 해의 반을 보낸 지금 스스로 많이 부끄럽다.   


의지를 새기기는 할 것인데 무슨 의지를 새길 것인가도 문제이기는 하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의지를 새길만큼 강력하고 충만한 동기가 있는 가이다. 뼈나 돌을 쇠로 만든 칼날로 파내는 것을 ‘새긴다’(刻)로 이해한다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고 또 지속적인 끈기도 필요하다. 슬슬 제목을 바꾸고 싶어 진다. 


어쨌거나 반년을 보낸 지금, 제목을 바꾸는 것도 스스로에게 머쓱한 일이 되고 말았다. 유지에 방점을 두고 남은 반년이라도 무엇인가를 새겨야 할 텐데 칼날은 무디어졌고 힘은 빠졌으니 결과는 거의 예측이 되기도 한다.


한편, 해가 갈수록 분명 해지는 생각들도 있다. 언제가 이야기한 逍遙吟詠(소요음영)이나 微吟緩步(미음완보)는 접어야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어리석지만 아직도 미련은 있다. 학교를 옮기고 나서 보니 세상살이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전에 있던 장소에도 꽃이 피듯 지금의 장소에도 꽃은 핀다. 꽃 피는 것처럼 모든 것이 여전하다. 다만 내가 조금 장소를 옮긴 것일 뿐. 


뜻을 새겨서 삶을 아름답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삶이라는 나의 의지와 전혀 무관한 과정을 아무런 저항 없이 끝낼 수는 없기 때문에 무언가를 새기는 것이다. 동기라면 동기다. 


『장자』 각의 편에서 ‘뜻을 새긴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해 놓았다. 


刻意尙行 離世異俗(각의상행 리세이속) 뜻을 새겨 행동을 고결하게 하고 속세를 떠나니 세속과 달리 행동한다.


2020년 6월 30일 늦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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