入無記*(입무기) 무기에 빠지다.
座看留霖雨 (좌간류림우) 가만히 앉아 장맛비 보고 있자니,
各滴含反衍*(각적함반연) 물방울마다 혼돈을 머금었구나.
自雲歷轉變 (자운력전변) 구름을 거처 모습을 바꾸더니,
沛然處處瀲 (패연처처렴) 억수같이 내려 곳곳에 넘치누나.
2020년 7월 30일 점심시간. 급식소에서 막 점심을 먹으려는데 오전 내내 잔뜩 흐려 있던 하늘에서 비가 엄청나게 쏟아진다. 점심을 먹고 나도 기세가 꺾이지 않는다. 번개와 우레가 번갈아 마음을 흔든다. 번잡하고 怠惰(태타)한 일상을 깨부순다.
2020년 장마는 조금 길어 보인다. 하지만 내가 감히 장마가 ‘길다’ ‘짧다’를 이야기할 처지는 아니다. 자연이 하는 일을 나 따위가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하지만 올해 비! 참 많이 온다.
* 無記: 불교에서 무기는 대개 세 가지 뜻이 있다. 그 처음은 부처의 침묵을 무기라 한다. 부처는 신이나 우주의 원리와 같은 초월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문제, 즉 세계의 공간이 유한한 것인지, 아니면 무한한 것인지, 또는 여래는 사후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은 것인지, 이와 같은 불교의 직접적인 교의 외의 질문에 대해서 답변하기를 거부했다. 이를 무기라고 한다. 그 중요한 이유는 형이상학적 문제는 인간의 인식과 경험을 초월해 있기 때문에 해결할 수 없으며, 또 비록 해결하였다 하더라도 해탈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즉, 인간의 사유와 이성적 판단이란 원천적으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언설은 오히려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본다. 두 번째는 선악을 가리기 이전의 상태를 말한다. 세 번째는 참선 중에 화두를 망각하거나 화두를 놓친 상태를 말한다. 위의 시에는 두 번째 의미를 차용하였다.
* 『장자』 秋水, 是謂反衍(시위반연): 反衍은 제한이나 구별이 없는 渾沌(혼돈)의 뜻이다. 또 다른 뜻은 순환의 뜻도 있다. 확장하면 경계 없는 도의 의미도 있다. 역시 반연에 뒤이어 등장하는 謝施(사시)라는 말도 비슷한 뜻이 있다. 『노자』에서 말하는 逝遠(서원)도 비슷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