堪暑獨座(감서독좌) 홀로 앉아 더위를 견디며
濕熱滿嘒嘒 (습열만혜혜) 무더위에 매미 소리만 가득한데,
處處聞潦浸 (처처문로침) 듣기로 곳곳이 물에 잠겼다 하네.
萬物始寂寂*(만물시적적) 만물의 처음은 고요했는데,
壞亂責人爲 (괴란책인위) 무너지고 어지러움은 사람 탓인 것을.
2020년 8월 4일. 오후가 되니 열기 탓인지 머리가 지끈거린다. 혼자 있는 방이라 에어컨을 켰다 끄기를 반복한다. 한반도 중부 지방은 이번 장마로 엄청난 피해를 입고 있다. 내가 사는 남쪽은 습한 열기가 천지에 가득하다. 한반도가 이렇게 넓었나? 여름방학을 앞둔 중학생들은 복도를 우르르 뛰어다닌다. 코로나 행동지침!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이 없다.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아이들이 하교하니 학교는 금방 적막해진다. 에어컨을 끄고, 습하지만 창문을 열고 밖을 본다. 열기 속에 있는 세상은 참 고요하다.
지금 지구 곳곳의 기후가 무섭게 사람들을 공격하고 있다. 아마 지구가 생긴 이래 지구에서 생존했던 그 어떤 존재보다도 현재의 인류는 지구를 괴롭히고 있을 것이다. 지구라는 거대한 존재가 인간이라는 미약한 존재를 공격하기 시작하면 금세기가 다 가기 전에 인류는 그 종말을 고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여 역사의 수많은 현자, 선각자들이 인위야말로 가장 위험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사진은 유홍초다. 점심 시간, 열기 속에서 산책 중에 촬영하다.
* 山堂靜夜坐無言 (산당정야좌무언) 산 집 고요한 밤 말없이 앉았으니,
寂寂寥寥本自然 (적적요요본자연) 고요하고 고요함은 본래 그런 것을.
何事西風動林野 (하사서풍동임야) 무슨 일로 서풍은 나무숲을 흔드는가,
一聲寒雁淚長天 (일성한안누장천) 기러기 싸늘히 울며 넓은 하늘 날아가네.
중국 남송시대의 선승 冶父道川(야보도천, 父를 ‘남자’로 새기면 ‘보’로 읽는다.)의 게송이다. ‘고요한 밤 산당에 고요히 앉으니’는 삼매의 경지다. 그 경지에서 본연의 세계를 寂寥(적요)하게 비추고 있다는 것은 이미 우주 법계의 실상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깨달음의 세계를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그런 와중에 서풍이 불어 숲을 흔들고 기러기 소리가 들린다. 선에 몰입한 무아의 세계가 非實在(비실재)의 세계라면 숲과 기러기 소리는 실재의 세계다. 초탈의 경지에서 문득 현상계의 일이 스친 것이다. 그런데 그 현상계의 일이란 하나의 소식이다. ‘그것은 무슨 소식인가’라고 생각해보고, 자문하는 데에 이 시를 읽는 묘미가 있다. 야보도천이 지은 金剛經五家解 속에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인데 부처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유명한 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