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75년 광복절, 대의명분(Cause)을 생각하다.
대의명분은 결과론이다. 대의명분은 거대한 흐름이므로 과정과 반응은 무시되기 쉽고 따라서 당장에 입증할 수도 없고, 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당장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또 당장 확인할 수 없다고 해서 대의명분이 사라져야 한다거나 또는 지키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대의명분의 결과를 이루기 위해서는 가끔씩 시대의 일반적인 흐름을 거슬리기도 하며, 심지어는 모든 것을 파기하고 최초의 자리로 되돌아 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한 때, 대의명분을 위해서라면 단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또 그렇게 했다. 대의를 위해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는 생각이 가끔은 스스로를 옥죄기도 했다. 그러나 그 지난날이 후회스럽거나 안타깝게 생각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세월이 지나 생각해 보니 그 자리를 목숨 걸고 수성하는 것만이 대의를 지키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뿐이다.
대의를 지키는 것은 직선으로 움직이는 것과 같다. 직선은 가장 가깝고 가장 분명하지만 때로 거대한 좌절을 불러올 수 있다. 직선의 움직임에서 오는 그 거대한 좌절은 좀처럼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전개되는데 그 순간 백척간두 진일보, 즉 모든 것을 놓을 줄 아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대부분 모든 것을 쥔 채로 그 좌절을 딛고 일어서려는 무모함 때문에 결국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마는 경우를 우리는 알고 있고 또 보기도 한다.
1945년 해방과 1948년 정부 수립으로부터 2020년 지금까지 민족적 대의를 지키려는 수많은 사람들이 명멸해 갔고, 지금의 상황이라면 그들의 대의는 거의 좌절된 것에 가깝다. 우리는 해방 75년 동안 우리에게 대의로 다가왔던 사람들의 희망과 좌절을 동시에 기억한다. 친일과 친미로 민족적 양심을 배반하고 대의를 저버린 자들이 세력을 키워 이제는 본질을 훼손하려 하지만 딱히 막을 방법도 대책도 없다. 오늘도 서울 시내에서 그들의 蠢動(준동)을 뉴스를 통해 본다.
하기야 이 천민 자본의 시대에 민족이 뭐며 대의가 뭐란 말인가? 참으로 구시대적인 발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생존하고 있는 이 땅 위에 존재하는 우리 민족 자존의 총합이 민족적 대의라면 우리는 여전히 거대한 대의의 흐름을 유지하여야만 한다. 덩치만 커진, 그러나 그 정신은 흐리멍덩 해진 거대 집권당과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임기 초반의 냉철함과 공정함이 흐려진 대통령을 보면서 우리 사회 곳곳에서 민족적 대의와 정통성을 거부하는 무리들의 부정적 에너지가 삶의 위협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우리 사회 또 다른 곳에서 여전히 그리고 굴하지 않고, 민족자존과 반 외세의 기치를 유지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에게 존경과 고마움을 표한다. 그들로 하여 우리의 대의는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