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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Oct 20. 2016

Nature morte ....,1869-70

빛과 외물

Nature morte à la bouilloire, 1869-70. Oilon canvas, 64.5cmⅹ81cm

강렬한 빛, 그리고 정물

Paul Cézanne(폴 세잔)의

Nature morte à la bouilloire(주전자가 있는 정물) 1869-70


폴 세잔(Paul Cézanne)은 부유한 은행가의 사생아로 태어났다. 엄격한 부친의 강요로 법학 공부를 하기 위해 법과대학에 진학했으나 결국 중퇴하고 스스로의 삶을 개척한다. 이런 일 때문에 부친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이 없어지자 평생을 강박관념과 우울증에 시달리며 살아가게 된다. 따라서 그의 그림은 전체적으로 어둡고 두터운 색조가 주류를 이룬다. 하지만 동시에 그의 그림에서는 강렬한 희망의 빛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이 그림에서도 그는 빛을 화면 가득히 끌어들였으나, 그의 삶처럼 강렬한 빛만큼 짙은 그림자도 있다. 


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화가로서의 성공이었는데 그는 몇 번이고 고향 엑상프로방스에 낙향했다가 다시 파리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절친한 친구였던 작가 에밀 졸라와 함께 그는 정치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했으며, 자신을 혁명론자로 선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그의 작품이 파리 최상층 귀족들이 주요 고객이 되는 파리 살롱전을 통과하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러나 결과는 늘 거절이었다. 이런 낙선으로 또 다른 화가 Edgar De Gas(드가)는 우울증에 빠졌지만 세잔은 이러한 거절을 바탕 삼아 1863년 ‘낙선전’이라는 대안을 마련하고 또 다른 불합격자인 Édouard Manet(마네), Henri Fantin-Latour(라투르) 등과 함께 작품을 전시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파리 살롱전은 그 뒤 20년이 흐른 후에야 비로소 그의 그림을 통과시킨다.


인상파(印象派 - Impressionism)는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일어난 가장 중요한 회화 운동이다. 신문기자 루이 르루아(Louis Leroy)가 모네의 작품『해 뜨는 인상』(1872, 파리, 마르모탕 미술관)을비꼬아서 그들을 인상파라 불렀다. 인상파는 자연 채광을 중시 함으로써 기본적으로 모든 작품은 야외에서 제작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더불어 밝은 색채를 사용하면서 많은 빛을 받고 공기에 둘러싸여 있는 사물의 인상에 대한 표현을 주로 한다. 세잔은 Vincent van Gogh(고흐), Paul Gauguin(고갱)과 함께 인상파의 중심에 서 있는 화가이다. 


도기에 비친 강렬한 빛의 반사는 뒤쪽 회색의 벽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그런가 하면 거친 식탁보에 쌓여있는 여러 종류의 야채와 칼이 약간은 비 논리적인 느낌으로 배치되어있다. 두 개의 병들이 만들어 낸 짙은 그림자와 탁자가 만들어 낸 그림자는 빛의 세기를 짐작하게 하는데, 아마도 이 곳은 태양이 그대로 비치는 밖이거나 실내라면 햇빛이 그대로 비치는 창가 인지도 모른다. 


스스로 혁명가이기를 원했으나 결코 혁명가로서의 자질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였던 그는, 그림 속에서 이전의 화가들이 보았던 것보다 더 깊이 그리고 더 넓게 사물을 관찰하고 또 묘사하려 했다. 이런 노력으로 묘사한 그의 그림은, 20세기를 풍미한 입체파의 시작점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장자 이야기


빛과 외물


혜자와 장자가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혜자가 이렇게 말한다.


子言無用(자언무용) : “그대의 말은 쓸모가 없네.” 

莊子曰(장자왈) : 장자가 말했다.

知無用而始可與言用矣(지무용이시가여언용의) : “쓸데가 없음을 알아야 비로소 쓸 곳을 얘기할 수가 있다네. 


장자는 불쾌함을 애써 감추고 자신의 논리를 이용하여 혜자의 이야기를 반박한다.


天地非不廣且大也(천지비불광차대야) : 땅이란 넓고도 크기가 비할 것이 없지만, 

人之所用容足耳(인지소용용족이) : 사람들이 걸을 때 쓰이는 것은 발로 밟는 부분이지. 

然則厠足而墊之致黃泉(연칙측족이점지치황천) : 그렇다고 발 크기에 맞추어 발자국만큼의 땅만 남겨놓고 나머지 부분은 황천에 이르도록 깎아낸다면, 

人尙有用乎(인상유용호) : 그래도 그 땅이 사람들에게 쓸모가 있겠는가?” 


혜자가 풀이 죽어 대답한다.


惠子曰(혜자왈) : 혜자가 대답했다. 

無用(무용) : “쓸 수가 없지.” 


莊子曰(장자왈) : 장자가 말했다. 

然則無用之爲用也亦明矣(연칙무용지위용야역명의) :“그렇다면 쓸데없는 것의 쓰임도 명백하지 않은가?” 


사실 장자의 이야기는 궤변에 가깝다. 그러나 그 궤변을 반증할 논리가 없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이유는 자명하다. 혜자의 쓸모에 대한 생각이 너무나 제한적이기 때문에 장자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해도 혜자가 반론할 수가 없는 것이다. 위의 이야기는 무용지용의 또 다른 설명이다. 장자의 논리적 증명은 명쾌하다. 본인의 말이 쓸모없다는 혜자의 핀잔을 가볍게 뒤집는다. 이렇게 간단한 논리로 이야기를 뒤집을 수 있는 것은 쓸모의 기준이 매우 모호함을 이미 장자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자 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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