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 사람들은 회한에 젖게 마련이다. 悔恨이란 지난 일에 대한 반성과 스스로에 대한 탄식인데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자신의 지난 일에 대한 회한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물론 회한이 너무 많은 것은 문제가 될 수 있겠으나 회한은 다가올 미래에 대한 또 다른 준비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다가오는 그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인데 나이가 든 사람들의 미래는 사실 지나온 날들의 반복이면서 동시에 큰 변화 없는 무미건조한 일상의 지속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생각의 끝에 달려있는 것이 바로 ‘우울’이다. 우울은 희망 없는 미래와 푸석한 현실의 반사경이다.
살아갈 날들이 살아온 날들보다 적어지는 나이가 되면서, 미래는 화려한 희망과 빛나는 목적지가 아니라 지나온 날들보다 약해지고 초라해지는 일만 남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하게 되는데 그 생각을 자양분으로 하여 곰팡이처럼 퀴퀴한 냄새를 피우며 눈 깜짝할 사이에 번지는 것이 우울이다. 이 상황을 막아낼 특별한 방법이나 대책은 별로 없지만 사람들은 딱히 그것을 적극적으로 막아내려고 하지도 않는데 그 이유는 너무 빠르게, 어떤 예고도 없이 어느새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이 든 사람들에게 지나온 날들이 화려하지 못했다면 앞으로도 당연히 화려하지 않을 것임은 지극히 당연한 사실인데, 우리는 별 가능성이 없는 희망을 그래도 미래에 부여하고 살아가게 된다.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라는 절대적 명제를 철석같이 믿으며 오늘과 비슷하거나 혹은 조금 못한 내일을 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희미하고 작은 희망이 마음에 있으므로 또 다른 에너지를 스스로의 몸속에서 마음속에서 이끌어 내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우울은 비 정상이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인 마음의 모습이다. 늘 우리와 함께 한 마음의 모습이지만 평소에는 다른 모습이거나 또는 평소에는 너무 작아서 발견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마음의 모습은 순간에 우주가 되었다가 또 순간에 바늘 끝도 되지 않는가? 그러니 보이지 않았던 우울이 어느 순간 마음의 전부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태풍이 오고 있는 밤, 그리고 여전히 코로나가 번성하는 시절, 바닥으로 내려앉는 마음의 모습을 보며 다시 새로운 희망을 찾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