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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Oct 21. 2020

跋  文

2020. 각의 

어제저녁 초승달이 예뻤다. 음력 9월 4일 달이 지고 있는 시간에 나는 우리 동네 연못 길을 걸었다. 연못에 비친 달빛을 촬영하고 싶었으나 가끔은 그냥 마음으로 두고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밤바람이 조금 차다. 계절은 부지런히 겨울로 가고 있다. 온도에 따라 마음이 달라지는 경험을 자주 한다. 


올해는 책의 분량이 조금 늘었다. 지난해에 100페이지 남짓이었는데 올해는 140페이지에 가깝다. 그만큼 쓸데없는 이야기가 많아졌거나 아니면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진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남겨두고 싶은 사진이 많아져서 할 수 없이 글을 쓰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시에 대하여 어떤 교육 과정도 이수한 적이 없다. 한문 역시 마찬가지다. 한 마디로 전부 似而非다. 그래서 나는 나의 글을 정식으로 출판하지는 않는다. 하기야 출판 하자는 사람도 없다. 미리 출판하지 않겠다고 선을 지켜서 자존심을 지키려는 방법이겠지만 설사 출판을 한다고 해도 지금 시절에 시가 그것도 한문으로 된 시가 누군가에게 읽히기는 사실 매우 어렵다. 


그래서 내가 돈을 들여 책을 만들고 공짜로 다른 사람에게 준다. 일종의 자랑인데 받는 분들은 이상하게도 고마워한다. 가끔 덤덤한 분들도 있다. 그럼 다음 해는 주지 않는다. 내 마음이다.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페이스 북에 내 시를 올린다. 매번 ‘좋아요’를 눌러 주시는 고마운 분들이 평균적으로 3~40 명선이다. 그분들 중에는 일면식도 없는 분들도 있다. 그저 가상공간에서 만나 서로의 글에 관심을 가지는 사이인데 때로 대면하고 있는 사람들보다 마음이 더 끌리는 분들도 있다. 


이런 잡스런 일기를 연말에 모아 책 형식을 취하며 스스로 붙인 이름인 ‘현적록’인데, 올해로 거창한 이름을 붙인 지 정확히 26년째다. 우리 아들과 나이가 비슷하다. 생각이란 참 알 수 없는 것이어서 無常한가 싶다가도 어떨 때는 한 치의 변화도 없다. 그것을 26년째 관찰하고 있다. 한 해 동안 쓴 다른 잡스런 글을 모아 같이 책을 만들려고 하니 분량이 너무 많다. 하는 수 없이 한시만 따로 떼어서 묶고 이름을 붙이니 2020년 ‘각의’가 된 것이다. 


올해는 60권만 출력(출판이 아니다.)할 예정이다. 스스로 엄격한 기준을 정하여 책을 나누어 드리려고 생각하고 있다. 출력한 책이 많으면 무용해지고, 모자라면 살짝 불편하다. 책을 드릴 수 있다고 생각하니 벌써 기분이 좋다. 받으시는 분들이 좋을지는 알 수 없다. 


2020년을 이렇게 보내고 있다.


2020년 10월 21일 오전. 지수중학교에서 중범 김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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