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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Oct 27. 2020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없다.

外物不可必*(외물불가필)


順便而北行 (순편이북행) 소식 따라 북쪽으로 가서

閒步見眞境*(한보견진경) 한가로이 걸으며 진경을 보았네.

美麗刺深肺 (미려자심폐) 아름다움은 폐를 깊이 찌르지만,

此中無別境 (차중무별경) 여기에 다른 경계는 없다네.


2020년 10월 26일. 2020년 ‘刻意’를 끝내고 2021년 새로운 이름을 정하려 하루 종일 이리저리 생각을 거듭하다가, 오후 들어 문득 『장자』 제26편 외물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외물이라는 말을 2021년 시집의 제목으로 불현듯 정하였다. ‘외물’은 ‘外物不可必’에서 나온 말로 ‘밖의 일은 반드시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2020년까지의 시집 표제는 내 의지의 방향성을 가지는 것이었다면 2021년은 외부의 사태에 대한 관찰자로서의 태도를 가지려고 한다. 자연을 보고 특별한 의지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다만 자연처럼 유지하려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나이 들어가는 모습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느끼는 것은 나의 삶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이다. 젊은 시절의 용기(치기에 가깝지만)와 무지에 의해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 뿐, 사실 처음부터 내 인생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문득 쓸쓸해진다. 운명론에 사로잡히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것이 이미 설정되어 있다는 이상한 느낌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한편으로 삶을 좀 더 깊이 관찰해보면 내 삶의 局面마다 미세한 나의 선택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지는 것을 경험한 적도 많다. 그러니 결정론, 혹은 운명론에 맡겨 두자는 것은 아니다.


덕유산 어딘가에서 본 단풍을 통해 내 삶에서 방향성이 가져다주는 속도감이나 왜곡의 문제를 천천히 되짚어보게 된다. 


* 외물불가필: 『장자』 제26편 외물의 첫 구절. ‘밖의 일은 반드시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뜻.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세상의 모든 일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으므로 그러한 상황(즉 자신의 뜻대로 되리라는 믿음)에 사로잡히면 내면의 평정과 진중함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마침내 자유로운 삶을 누릴 수 없다는 이야기로 해석할 수도 있다.


* 당나라 승려이자 시인인 皎然의 시 宿山寺奇李中丞洪 중 한 구절을 차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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