關係
見利忘彼稱*(견리망피칭) 이득만 생각하면 상대를 잃고,
爲衡失躬親 (위형실궁친) 균형을 위하면 나를 잃네.
萬狀無空寂*(만상무공적) 모든 것은 실체가 없는 것,
丞切亦煩惱 (승절역번뇌) 맺고 끊음이 또한 번뇌로다.
2020년 10월 31일. 산행을 하며 세상과 나, 사물과 사물 사이의 관계를 생각하다. 나와 세상의 관계는 어떤 방식으로든 유지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 내부적 상황은 매우 복잡하다. 결국 각각의 사물들은 모든 관계 상황 속에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존재라고 본다면 균형은 멀다. 나 역시 예외일 수는 없다. 다만 균형 있는 모습으로 보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살아오면서 관계 중 가장 어려운 것은 언제나 사람들과의 관계다. 내 삶에서 지금처럼 현실과 가상의 공간에서 많은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온 적이 별로 없다. 아마 앞으로 이 관계는 더욱 복잡해질 것인데……
관계의 전제는 실체에 있다. 우리말로 실체를 설명할 수 없다. 왜냐하면 서양에서 유래된 말이기 때문이다. 실체는 영어 Substance를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다.
Substance는 희랍어 히포케이메논(hypokeimenon)을 라틴어로 번역한 수브스탄티아(substantia) 또는 수브스트라툼(substratum)에서 유래한다. 희랍어 히포케이메논(hypokeimenon)은 여러 가지 속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불특정 존재를 말한다.
그러므로 관계는 다양한 속성을 가진 우리 모두가 그 대상이다. 관계가 유지된다는 것은 그 속성이 여러 모로 잘 맞아떨어진다는 증거이고, 훼손은 속성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일 것이며 복원은 충돌 부분이 사라지거나 혹은 조정되어 서로 맞아지는 것인데, 여기에는 인간에게만 특별히 존재하는 화해, 이해, 배려라는 기제가 작동하게 된다.
* 장자 ‘山木’의 이야기를 용사함.
* 空寂(공적) 공공적적(空空寂寂)의 준말. 불변하는 고유한 실체가 없는 상태. ‘空寂하다’에서 ‘空’은 離 差別(이 차별), 곧 차별을 떠남을 뜻하고, ‘寂(적)’은 離 變化(이 변화), 곧 변화를 떠남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