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장 존재에 대하여 교재
*점점 어려워 진다. 하지만 어려움은 표면적 상황이다. 실제로 어려워지는 것이 아니라 어려워 보일 뿐이다. 아이들과 함께 담담하게 걸어가자.
제2 장 존재에 대하여
제1 절 존재란 무엇일까?
1. 존재한다.
우리는 흔히 무엇이 ‘존재한다’라고 말한다. ‘어떤 것이 이 세상에 있다.’라는 뜻으로 하는 말이다. 그런데 과연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 인류 역사가 시작되고 사람들이 무엇인가 생각을 하면서부터 이 질문에 마주했을 것이다. 사실은 지금도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분명하고 확실한 답을 가지고 있지 못한 상태다. 다만 여러 종류의 이야기들이 하나의 구조를 이루어 막연히 그럴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할 뿐이다.
그런 논의의 하나로 하이데거의 이야기가 있다. 하이데거는 일단 ‘존재한다’ 혹은 ‘있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전제조건으로 우리는 그것을 ‘모른다’로부터 시작하려 한다. 즉 지금까지(하이데거가 살았던 19세기 이전)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는 시작부터 잘못되었다고 말하였다.(형이상학적 이야기는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한다.)
하이데거는 존재의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 ‘존재’와 ‘존재자’를 구분하여 설명한다. 여기서 ‘존재자’란 현실에 존재하는 사물들을 말한다. 즉 우리가 보고 있는 사물,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그리고 읽고 있는 우리가 ‘존재자’이다. 그런가 하면 ‘존재’는 바로 그 ‘존재자’의 근거이다. '존재자를 '존재자'일 수 있게 해 주는 그 어떤 것이 바로 '존재'라고 이야기한다. 조금 어려운 이야기지만 ‘존재’는 ‘있음’이고 ‘존재자’는 ‘있는 것’이다. 즉, ‘있음’은 우리가 감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모든 상황과 감각을 넘어서 있는 모든 것으로 확대할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있는 것’은 '있음'을 바탕으로 하여 우리의 감각으로 파악될 수 있는 지정되고 특별한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다.
2. 인간, 그리고 실존
위에서 말한 하이데거에 따르면 인간은 ‘존재자’이다. '존재자'인 인간은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질문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자'이다. 이러한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 하이데거는 인간의 이러한 능력을 특별히 ‘현존재’라고 불렀다. 이렇게 인간을 다른 존재들과 특별하게 구별하는 이유는 이렇게 함으로써 인간만이 가진 존재론적 의미를 드러낼 수 있다고 하이데거는 믿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스스로 '존재'의 의미를 묻는 '존재자'이기 때문에 마침내 특별한 방법을 통해 인간의 ‘존재’가 드러날 수 있는 희미한 희망을 품고 있다고 하이데거는 생각하였다. 동물들은 자신이 왜 사는지, 사는 것은 무엇인지, 나는 누구인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오로지 인간만이 스스로의 존재 이유와 삶의 과정을 고민한다. 이러한 상황을 총체적으로 하이데거는 ‘현존재(Dasein)’라는 말로 함축한다. 하이데거는 이런 상황, 즉 인간 스스로 자신의 존재 의미를 묻는 특별하고 의미 있는 태도를 실존(實存;독 Existenz, 영 Existence)이라고 불렀다. 즉 실존이라는 말은 현존재(예를 들어 인간)가 존재의 의미에 대하여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있다는 말이다.
독일 출신의 위대한 사상가 헤르만 헤세는 그의 소설 데미안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자연이 던진 돌이다.”
즉 인간은 세상에 던져진 '존재자'이다. 던져진 돌은 누군가에 의해 던져졌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이나 의지와는 무관하다. 인간은 세상에 오고 싶어서 온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세상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아마 다른 모든 생명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만은 그 상황에서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그 이유를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점이 다른 모든 생명체들과 인간이 구별되는 부분이다.
인간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 던져진 '존재자'이다. 하이데거는 이 상황을 세계 <나 <존재의 위계로 설명하려 한다. 즉, '세계'의 안에 '나'가 있고 '나'라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라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