於山天齋 산천재에서
南冥主敬義 (남명주경의) 남명께서는 경과 의를 주장하셨지,
劍鐸戒懈像*(검탁계해상) 칼과 방울로 게으름을 경계했다네.
喝嚴文莊威 (갈엄문장위) 말씀은 엄격했고, 글은 장중하고 위엄 있었지,
今歎侗秋江 (금탄동추강) 오늘, 어리석은 가을 강에서 탄식 하노라.
2020년 11월 13일 오후. 경남 산청군 시천면에 있는 남명 조식 선생의 유적지를 둘러보면서 알 수 없는 비감함에 사로잡혔다. 한 나라 문화의 깊이는 그 나라 곳곳에서 위업을 남긴 선현들에 대한 올바른 평가와 그분들의 유업을 그 어떠한 정파적 이해관계없이, 같은 비중으로 宣揚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남명은 퇴계와 동시대의 인물로 당대 영향력이나 깊이 그리고 학문에서 쌍벽을 이룬 인물이다. 두 사람 모두 위대한 학자이자 교육자였지만 지금 남명 선생을 기억하는 이가 드물다. 반면 퇴계는 전국적인 인물이 되었으며 심지어 천 원 화폐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는 지난 수백 년 동안 특정 지역, 특정 정파의 파당적 이익에 따라 문화를 편향되게 발전시켜 왔다는 증거이다. 우리가 해방 후 지난 80년은 경제적으로 먹고사는 것에 매달렸다면 이제부터는 우리 문화의 다양성과 보편 타당성을 발견하고 그 깊이를 더하여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민족이 가진 정신적 깊이와 자산을 균형 있게 연구하여 인류 보편에 이바지해야 할 때인 것이다. 남명의 사상은 그럴 만한 충분한 가치와 깊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내가 퇴직 이후의 일을 발견한 느낌이다. 아직 이 나라 기록 문화유산의 80%는 한자 상태로 보존되어 있고 갈수록 한자는 특정 사람들만 읽는 어려운 문서가 되어가고 있다. 퇴직 이후 능력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천천히 그리고 아주 깊이 한문으로 된 문서를 번역하는 일에 매달리고 싶다.
* 남명이 늘 차고 다니는 칼(경의 검)에는 ' 內明者敬(내명자경), 外斷者義(외단자의)'라는 여덟 글자가 새겨져 있다. '안으로 나를 깨우치는 것은 敬이며, 밖으로 결단하는 것은 義다'는 뜻이다. 역시 늘 휴대하고 다닌 방울을 '惺惺者(성성자)'라 불렀는데 조금만 방울이 울려도 스스로를 경계하고 꾸짖는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사진은 산천재에서 지리산 천왕봉을 바라다 본 풍경이다. 제일 뒷쪽 봉우리가 지리산 제일봉 천왕봉(1915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