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중학교 철학수업(27)

by 김준식

언제나 수업을 끝내고 오면 자괴감이 밀려온다. 예시를 잘 못 들어 설명하여 아이들이 혼란스러워하지 않았는지, 논리적 발전 단계를 무시하고 어려운 이야기부터 꺼내지는 않았는지, 너무 다양한 이야기를 펼쳐 놓아 아이들을 어지럽게 하지는 않았는지, 아이들에게 발표 기회를 적당하게 주었는지......


30년 묵은 고민은 여전히 유효하고 동시에 여전히 견고 하기만 하다.


오늘 수업을 하면서 전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점을 하나 발견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이들 중 일부는 이 수업이 점수화되지 않아 성적에 반영이 되지 않기 때문에 적당히 노는 수업으로 판단하고 내 이야기는 등한시한 채, 수업 중에 이런저런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뭐 큰 일은 아니다. 그럴 수 있고 그것조차도 품고 나아가야만 진정한 철학 수업이 아닌가? 하지만 마음 한 편이 찜찜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오늘의 주제는 ‘신’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다. 방편으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게임 이야기를 사용하여 설명했다. 우리가 게임에서 자주 사용하는 나의 캐릭터는 내가 창조한 나의 분신이다. 마치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한 인간처럼, 그리스 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가 창조한 인간처럼, 수메르 신화에서 티아마트가 창조한 인간처럼, 북유럽 신화에서 오딘과 그 형제들이 창조한 인간처럼.


정확하게 신이 있다는 가정을 하는 것은 아니고 다만 예시를 들어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신'의 존재 유무를 아이들 스스로 판단하게 하는 것이 목표라면 목표일 것이다.


신이 있다고 가정하면, 거꾸로 창조주인 ‘신’의 존재를 피조물이 과연 설명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즉 게임에서 캐릭터의 존재를 통해 그 캐릭터를 창조한 내가 있는 것은 분명한데, 만약 내가 만든 그 캐릭터가 나의 존재를 알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우리 수업의 핵심인 것이다. 이렇게 설명하자 아이들은 매우 모호한 표정을 짓는다. 내가 제시하는 여러 이야기의 목적은 바로 그런 의문이나 모호함을 여러 상황으로 확장하고 그 상황마다 아이들이 주체가 되어 고민해보자는 것에 있다. ‘있다’ ‘없다’의 이분법으로 설명할 수 없는 모호함이 아이들에게 지적인 호기심의 확대로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것이 이 수업의 목표 혹은 방향일 것이다.


수업의 후반부에 ‘보편’에 대하여 슬쩍 이야기를 했더니 전혀 수긍을 할 수 없어하는 눈치다. 다음 시간에는 유용한 자료를 이용하여 이 문제를 이야기해보기로 한다.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상식이나 인식의 범위가 아직은 넓지 않고 아직은 다양하지 않기 때문에 학습이 경험이 되고 학습이 상식이 될 수 있도록 해야 되는데 나의 능력이 늘 한계 상황이다. 목소리만 높여 수업을 했더니 목만 아프다. 길은 아직도 멀었는데 벌써 오늘 수업을 마칠 시간이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 진보하고 있다. 그 믿음으로 이 수업의 에너지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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