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중학교 철학 수업(28)

by 김준식

중학교 교육과정을 운영하면서 정규 교과 외에 반드시 이수해야 할 각종 교육이 다양하고 많다. 창의적 체험활동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는 다양한 교육은 사실 실 생활과 밀접한 영역이 대부분이다. 당연히 교과 안에서도 다루는 영역이지만 특별하게 독립하여 교육시켜야 될 필요가 있는 응급, 안전, 생명존중 교육, 흡연, 사이버 윤리, 성폭력 예방, 성매매 예방 등의 교육이다.


오늘은 사이버 윤리 교육이 있는 날인데, 학교에 오시는 강사의 사정으로 나의 철학 수업 시간을 내주고 말았다. 교육과정 운영의 책임자로서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아쉽다. 수업을 하지 못해 아쉽다고 하면 더러는 욕을 할 수도 있겠지만 아쉬운 마음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2020년 철학 수업은 오늘로 23번째이다. 즉 22주를 해 왔다는 이야기다. 그 사이 2~3주가 빠지고 학기 초에 4~5주가 빠졌다. 통상 년간 34주를 수업 주로 본다면 70% 정도를 달려온 셈이다. 성과주의에 매몰되지 않고 오로지 아이들의 성장과 삶의 자양분으로 남길 바라는 철학 수업이지만 많은 시간을 투자했음에도 항상 아쉬움은 남는다.


고등학교 과목 중에 '생활과 윤리'라는 과목이 있다. 고교 교사 시절 그 과목을 수업하면서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데카르트'를 수업하면서 아이들에게 너무나 자세하게 수업하는 바람에 문제지 풀이를 하지 않는다고 학부모 민원을 받은 적이 있다. '라이프니츠' 시간에는 ‘단자론’이라는 아주 어려운 책을 소개하고 '스피노자' 시간에는 ‘에티카’를 너무 상세하게 수업하는 바람에 또 이런 민원을 받은 적이 있었다.


당시나 지금이나 나는, 나의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수업을 듣는 당시의 아이들은 아마도 그들의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단자론’과 ‘에티카' 수업을 들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 몇 시간, 문제풀이를 하지 않아서 수능 점수가 나빠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당시의 민원은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는 일이다. 또 사회문화와 경제를 수업하면서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수업했고(사실 고등학교 과정에서는 이런 수업이 전혀 필요 없기는 하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몇 시간 동안 수업한 기억이 있다.


그렇다고 내 수업을 들은 아이들이 모두 그런 수업 내용에 동의하지는 않았다. 수능과 무관해서 싫어했고, 너무 어려워 대부분 싫어했다. 지금 그 아이들을 생각해보니 조금 미안해지기도 한다.


나는 늘 그렇지만 참 필요 없고 효과 없는 일에 에너지를 많이 쏟는 편이다.


이제 사이버 교육을 마친 강사님이 수업을 마치고 인사하러 왔다. 2020년 12월 3주 월요일 아침이 이렇게 흘러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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