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동지다. 이 이야기를 수업의 시작으로 했다. 팥죽, 그리고 동지와 지구, 태양의 관계 그리고 북반구에 위치하는 우리, 황경과 백경에 대한 이야기를 했더니 아이들은 과학 시간이냐고 투덜거린다. 그래도 꿋꿋하게 태양력과 태음력, 일 년, 한 달, 하루, 한 시간, 1분, 1초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했다. 현재 1초의 정의는 세슘-133 원자가 91억 9천263만 1천770번 진동하는 것으로 규정한다는 이야기까지 했다.
그러고 나서 다시 역으로 태양계의 무한의 거리와 은하와 우주의 이야기를 거쳐 마침내 빅뱅에까지 이야기를 계속하였더니 아이들의 표정이 참으로 볼 만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미리 신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절대로 하지 않는 것이다. 이 이야기들을 하는 핵심 이유는 아이들 스스로 이런 복잡하고 거대한 사태를 수용하고 인지하는 데 있다.)
그리고 토마스 아퀴나스의 아리스토텔레스적 방법론을 차용한 신의 존재 이유 다섯 가지를 설명하였다. 그리고 각각의 반론을 설명했다.
첫째: 세상의 모든 사물은 변화한다. 이런 변화가 있으려면 그것을 처음 움직이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 그 처음 움직이게 한 존재가 신이다. 도미노 게임 이야기를 해 주니 조금 효과가 있었다.(반론: 그 신은 누가 움직였을까?)
둘째: 세상 모든 일은 원인과 결과가 있다. 여기서 어떤 결과의 원인이 되는 일이 곧 신이다. (반론: 그러면 신은 결과인가? 아니면 원인인가? 결과라면 원인은? 원인이라면 그 결과는?)
셋째: 우연히 발생하는 것도 어떤 필연적인 것이 있을 때 가능하다. 이때 그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신이다.
넷째: 우리는 사물들을 비교할 수 있다. 이런 비교가 가능한 것은 완전하고 절대적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그 완전하고 절대적 기준이 신이다. (반론: 그 절대적 기준을 정하는 것은 신인가? 아니면 인간인가?)
다섯째: 모든 사물과 사태는 어떤 목적을 위해 나아간다. 이때 그 목적을 설정해 주는 것이 신이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반론: 목적이 선한 것인지 악한 것인지 알 수 없다면?)
14~6세의 청소년의 머릿속에 아침나절 커다란 지적인 혼란을 일으켰다. 의도한 일이다. 하지만 일부는 졸리고, 일부는 볼펜, 샤프 펜 수리에 여념이 없다. 또 일부는 저희들 만의 언어를 주고받으며 즐겁기만 하다. 그래도 내 이야기를 아주 가끔 듣기는 한다. 그걸로 충분하다.
그렇다고 이 지적인 혼란을 잠재울 필요는 없다. 오히려 지속적으로 혼란스럽게 해야 하는데 일주일에 한 번의 기회밖에 없어서 다음 주 아침이면 아이들은 아주 완벽하게 정돈된 상태로 나와 마주한다. 그러나 이 신선한 지적 혼란스러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 기억이 바탕이 되어 스스로의 가치관을 세우는 사람들로 성장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이를테면 신의 존재를 인정하든 혹은 인정하지 않든 자유롭게 결정할 아주 작은 근거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한 방향을 정함에 있어 이러한 지적인 혼란은 매우 유용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