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학년도 철학 수업을 끝내며
별로 기억에 남지 않는다는 말을 들으니 서운함과 동시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운함의 이유야 당연히 노력에 대한 대가를 바라는 욕망이겠다. 아이들에게 뭔가 심각한 이미지를 심어주지 않았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거창한 철학적 의제로 고민해야 할 나이는 분명히 아니니까. 사실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는 말을 들을까 두려웠는데 그 정도는 아니라고 아이들은 애써 부정했다. 뭔가 있기는 있다는 이야기인데 뭔지는 모르겠다는 것이 아이들의 이야기다. 그걸로 일단 만족한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부분은 신의 존재에 대한 문제다. 대단히 조심스럽고 어려운 문제여서 이야기하면서도 계속 반추하고 또 반추한다. 자칫 이야기를 엉뚱하게 끌고 갔다가는 여러 가지 장치 혹은 금지에 걸려들 가능성이 많다. 다행히 아이들이 신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개방적으로 듣고 생각하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2학년 학생 중에는 기독교 신자가 있어 조금은 조심스러웠지만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에서 묘사되는 신과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에 등장하는 이야기(앞 시간 이야기를 참조)를 골라 약화시키고 약화시켜서 이야기해주었다.
내일이 졸업이라 20분 정도를 졸업생들에게 말할 기회를 주었다. 미리 준비되지 않는 말은 어른들도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문득 아무 이야기나 해 보라고 했더니 3학년 아이들의 표정이 굳어진다. 무슨 말이라도 좋다는 말이 이 아이들을 더 굳게 만드는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주제를 정했다. ‘기억’에 대해 이야기해 보라고 말했다. ‘기억’은 동일한 사태를 두고도 개인차가 많다. 그래서 ‘기억’은 늘 진실과 멀어진다.
3학년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거의 ‘기억’이 조작되고 있는 듯했다. 2020년의 기억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는데 나의 ‘기억’과 아이들의 ‘기억’이 많이 달라 문득 아이들의 기억이 맞나 싶기도 했는데 이 지점이 바로 조작의 지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2021에 신입할 학생들은 신의 존재를 넘기고 국가의 존재부터 이야기를 듣게 될 것이다.
아이들아 고생 많았다. 더불어 나도 참 고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