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화의 필연성
어린 시절 알 수 없었던 것 중 하나는 동네 어떤 집에는 절대 가지 말라는 할머니,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의 엄명이었다. 그 집엔 우리 반 아이가 살고 있었고 매우 친하기도 했는데, 그 집엔 발걸음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늘 들으며 몰래 그 아이를 만나기도 했다. 세월이 흐르고 그 이유를 알았다. 이유인즉 할아버지 세대에 있었던 일로 집안 간에 다툼이 있었다.
나의 할아버지와 그 집 아이의 할아버지는 동네에서 친한 친구로 소문이 났을 정도로 아주 절친한 친구였다. 그러나 나의 할아버지가 1941년 만주로 가는 바람에 두 사람의 길을 달라졌고 그 뒤 할아버지의 친구는 주재소(일제 강점기부터 광복 때까지 한반도 전역에 존속했던 경찰 최일선 기관)에 취직을 하게 되었고 친한 친구였던 내 할아버지 집에 손해를 주는 일을 했다 한다.
해방이 되고 할아버지 친구의 집은 아주 부자가 되었으나 6.25 때 그 양반이 총살이 되면서 집안은 다시 쇠락하였고 전쟁이 끝나면서 우리 집안과 관계뿐만 아니라 동네 모든 집과 관계가 서먹해졌다 한다. 이 땅에서 흔히 보이는 해방공간의 스토리다.
왜! 이미 수 십 년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그 친구분을 이렇게 소환하는가?
한 때 친했던 내 할아버지와 그 친구를 분열시킨 원인이 궁금해졌다. 먹고사는 문제일까? 아니면 먹고사는 문제 이전의 생각의 문제일까? 먹고사는 문제가 생각의 문제로 바뀌었을 가능성이 많다. 그런데…….
2020년 지금, 나는 또 하나의 거대한 분열을 본다. 즉, 촛불을 들고 이 정권의 탄생에 기여했던 사람들의 분열이다. 이 정권을 처음부터 혐오하고 저주했던 부류들을 예외로 하고 제법 동의와 지지를 보낸 사람들의 분열을 보면서 내 할아버지와 그 친구, 그리고 마치 요즘 유행가처럼 흔하고 자주 있었던 조선시대의 換局과 역모를 떠 올린다.
이 분열의 원인은 무엇인가? 먹고사는 문제인가? 나아가 욕망의 문제인가? 아니면 더 나아가 이념과 생각의 문제인가? 그도 아니면 헤게모니의 문제인가?
일개 검찰총장과 공수처의 문제는 아니다. 그 문제 밑으로 흐르는 욕망들...... 각 종 비위와 비리를 덮는 논쟁과 그 논쟁을 덮는 또 다른 문제들...... 그 혼란의 틈 바구니에서 제 욕심을 채우는 자들에 대한 상실감과 좌절감 등이 복잡하게 얽혀서 지금의 분열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어제까지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었던 원수가 오늘 아침 돌연 친한 벗이 되는 사회가 지금이다. 차라리 조선의 역모를 파헤치던 방법, 즉 살을 찢고 뼈를 발라내는 극악한 고문이 훨씬 더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지금까지 분열의 끝은 등 돌리는 것으로 끝이 났지만 이제는 그 등에 칼을 꽂고 더 나아가 목숨을 뺏아 버린다. 그러나 놀랍게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아주 깨끗하게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이 아침, 지역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한반도의 변방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의 눈에 이 거대한 분열은 참으로 안타깝고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