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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Dec 12. 2020

별 일 없이......

無別事


始廫如稱空 (시료여칭공) 텅 비어있음을 공이라 하고,

林火燒盡無 (림화소진무) 숲이 불에 타 없어지니 무라.

煩腦恒漲溢 (번뇌항창일) 번뇌는 언제나 넘실대는데,

滅盡百劫嘿 (멸진백겁묵) 멸하여 없어지니 백 겁 동안 고요하구나. 


2020년 12월 11일 오후. 존경하는 서예가 순원 선생이 먼 지수까지 걸음을 해 주셨다. 더욱 고마운 일은 본인이 새긴 인본을 들고 오셨다. 이 인본에는 이런 이야기가 숨어 있다. 어느 날 순원 선생께서 문득 3글자로 된 말을 급히 알려 달라는 ‘카톡’이 나에게 왔다. 당시 내 머릿속에는 별 일 없이 사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을 때다. 이유인즉 친구들이 자주 아프고 이런저런 일에 마주하는 것을 보며 정말 별 일 없이 사는 것이야말로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이며 동시에 가장 바라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하여, ‘無別事’라고 말씀을 드렸고 그대로 그 3글자는 이렇게 순원 선생의 칼 끝에서 오묘한 작품으로 새겨진 것이다. 황송스럽게도 어제 그 인본을 받아 드니 참으로 고맙고 아름다워 집에 가져와서 한 참을 보다가 어떤 用事도 없이 독자적으로 단 번에 20자를 짓게 되었다.


한자 ‘없을 無’는 빽빽한 나무 대(또는 큰 대)와 불화가 만나 ‘없다’는 뜻의 회의 글자로서 본래는 있었음을 가정하고 그것이 사라진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다. 즉,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는 ‘空’과는 그 의미가 비슷하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다.


어쨌거나 순원 선생에게 고마움과 존경을 표하며 정말 별 일 없는 삶을 살고 싶다. 장기하라는 가수가 부른 노래도 이런 비슷한 내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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