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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Jan 22. 2021

한 없이 높고 깊으니......

無上甚深


話頭繫虛空 (화두계허공) 화두, 허공에 매달리니,

晝月倣華嚴 (주월방화엄) 낮 달 화엄인 체하네. 

花蕾坼煩惱 (화뢰탁번뇌) 꽃망울 터지면 번뇌려니,

覓心游靑天*(멱심유청천) 마음 찾다가 파란 하늘에 허우적.


2021년 1월 22일. 며칠 전 촬영했던 장면이 머리를 맴돌았지만 글을 만들지 못하다가, 문득 오늘 아침에 20자로 뭉쳤다. '혜가'가 팔을 자르고 '보원'이 고양이를 단 칼에 죽인 것을 어리석은 내가 어찌 알아차리겠는가 만, '동안거' 중인 겨울 산사 마른 나뭇가지에 걸린 플라스틱 등과 푸른 하늘, 그리고 낮 달을 보니 문득 실체 없는 생각이 머리를 스칠 뿐이다. 아직 봄이 오지 않았으니 화려한 꽃도 없고 번뇌의 푸르름도 없다. 하여 겨울 산사는 한 없이 높고 깊다.


* 覓心(멱심):  '달마'가 '혜가'에게 법을 전하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말이다. 이야기는 이러하다.

'혜가'는 '달마'에게 법을 구하기 위해 면벽하고 있는 스승을 기다리며 눈 속에 오래 서 있었다. 

'달마'가 벽력 같은 소리로 '혜가'를 꾸짖는다. 

“도대체 무엇을 구하려고 이렇게 눈 속에 서 있는가?”

“제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부처께서 감로의 법문으로 중생을 구했듯이 스승께서도 제게 깨우침을 주시기 바랄 따름입니다.” 

 “이놈아! 正法을 구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목숨까지도 버려야 할 각오가 있어야 하는데 너는 부질없는 말로 나를 현혹하지 마라! 만약 붉은 눈이 내리면 너를 제자로 받아들이겠다.” 

그러자 눈 속에 파묻혀 오래 움직이지 않던 '혜가'가 몸을 움직여 자신의 옷섶을 뒤적여 단도를 꺼냈다. 주저 없이 스스로 왼쪽 팔을 잘랐다. 선혈이 눈 위로 떨어져 붉게 번져 나갔다. 

'혜가'의 행동을 바라보던 '달마'가 물었다. 

 “진정한 도를 구하는 자라면 몸을 몸으로, 목숨을 목숨으로 보지 말 것인즉, 너의 행위는 합당하다. 그렇다면 네가 구하는 도는 무엇이냐?”  

 “저의 마음이 불안하니 저의 마음을 편안케 해 주시기를 원할 따름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너의 그 불안한 마음을 가져오너라.” 

 “찾고 있었으나 그 마음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覓心了 不可得).”  

 “비록 네가 찾았다 해도 그것을 어찌 너의 마음이라 할 수 있겠느냐. 너의 마음은 이미 편안해졌다.” 

순간, '혜가'는 40년 동안 자신이 붙잡고 있던 그 불안함이 사라져 버렸음을 느끼고는 탄성을 질렀다. 그리고는 달마 앞에 엎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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