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과거, 그리고 현재

by 김준식


아침은 춥더니 한낮에는 따뜻했다. 그리고 밤이 되니 다시 추워졌다. 봄이 오고 있다는 증거다. 기온이 널뛰기하면 우리의 감정도 따라서 출렁인다. 문득 ‘엘리제를 위하여’가 듣고 싶어 졌다. 봄이 오는 애매한 시기의 이런 밤에 어울리는 음악이 아닐까 싶다. 짧고 간결해서 가볍게 들을 수 있다. 명징하고 예쁘다. 하지만 약하지만 다른 감정 선도 그 속에 있다.


이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를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내 기억 저편에 분명 이 음악에 대한 최초의 느낌은 있으리라. 이 음악을 문득 꺼내 듣고 싶은 충동은 내 기억 속 어딘가에 있는 이 음악에 대한 최초의 기억의 작용 인지도 모른다. 그 당시의 온도와 습도, 분위기,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것을 저장했던 나의 의지……기억에 대한 이야기는 많다.


Marcel Proust(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À la recherche du temps perdu(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프루스트가 바삭한 과자 한 조각을 곁들인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 갑자기 시골집에서 할머니가 차에 적셔주곤 하던 마들렌 조각이 생각났다. 이 에피소드에 관한 프루스트의 최초의 언급은 이러하다. “차에 적신 과자의 맛은 죽은 시간들이 숨어 있는 은신처의 맛이다” 우리의 지성으로서는 도저히 되찾을 수 없는 것을 차와 비스킷에 대한 우리 몸 특정한 기관의 기억이 찾아낸 것이다.


James Joyce(제임스 조이스)는 그의 책 Dubliners(더블린의 사람들)에서 이렇게 썼다. 기억 중에는 “사람들이 내면의 가장 어두운 곳에 숨겨두는 기억들이 있다. 그 기억들은 거기에 머물면서 기다린다. 언젠가 어떤 우연한 말이 갑자기 그들을 불러내기를, 그리하여 대단히 다양한 환경 중 하나에 직면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조이스가 말하는 ‘우연한 환경’이란 프루스트의 바삭한 과자와 커피일지도 모른다.


과거는 결코 아름답거나 또는 결코 추하지 않다. 현재 이전의 장면이 박제된 것이 아니라 과거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끊임없이 현재의 우리에게 영향을 준다.


Henri Bergson(앙리 베르그송)은 그의 책 Matière et mémoire(물질과 기억)에서 인간은 과거를 통합하여 엄청나게 많은 기억들을 활용하여 현재의 도전에 대응할 수 있다고 했다.


서설이 길었다. 음악을 듣자.


Ludwig van Beethoven - Bagatelle in a minor WoO 59 (Für Elise)


우리가 흔히 듣는 ‘엘리제를 위하여’는 베토벤 사후 그를 연구하던 루트비히 놀에 의해 베토벤이 작곡한 이 악보가 발견되었고 그가 약간 편곡한 것이 초기 버전이다. 후에 여러 작곡가들로부터 편곡되었다. 그러니까 베토벤이 작곡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의 음악은 분명 베토벤이 표현하고자 했던 최초의 의도는 아닐지도 모른다.


독일의 음악학자 막스 웅거는 ‘엘리제’의 정체에 대해 세 가지 가설을 이야기 하지만 무엇이 옳은지는 아무도 모른다. 즉, 베토벤의 애인 이름을 잘못 적었다는 이야기와 베토벤의 친구의 별명이라는 이야기, 그리고 친구인 엘리자베스 뢰켈을 위해 작곡되었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어쨌거나 이 음악은 수려한 피아노 소품으로 아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음악 중에 하나일 것이다. 자동차 후진 시 울리는 소리도 이 음악, 공공기관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도 이 음악, 이 음악이 쓰이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이다. 아마 베토벤이 살아 이 땅에 온다면 이런 현상을 고마워할까?


정식 곡명은 Bagatelle in a minor WoO 59 (Für Elise)이다. 여기서 Bagatelle이란 피아노 소품곡이라는 뜻이다. 곡 느낌은 이슬처럼 명징하면서 동시에 약간의 슬픔이 묻어난다. 하지만 미량의 슬픔은 삶의 원동력인 것처럼 알 수 없는 에너지도 감지할 수 있다.


WoO 이 기호는 Werke ohne Opuszahl(작품번호 없이 인지한다는 뜻) 베토벤의 음악을 표시할 때 쓰는 리스트 머리 기호이다. 즉 이 Für Elise는 베토벤의 전체 음악 중 59번째로 분류된 음악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베토벤 음악에서는 이 기호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바흐는 BWV, 헨델 HWV 모차르트는 K 슈베르트는 D 등이 우리에게 잘 알려진 분류기호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c1iZXyWLnX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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