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만나는 철학

by 김준식

어제저녁 ZOOM이라는 다소 익숙하지 않은 가상의 공간에서 20여 명의 수강자와 마주하면서 “일상에서 만나는 철학”이라는 주제로 약 1시간 30분 정도의 이야기를 했다. 강좌를 꾸린 단체 <지역 쓰담>은 경남 진주를 중심으로 하는 1) 한보따리 책방 시장 등 문화 기획 2) 생애 구술, 마을 아카이브 3) 남강 오 백리 여행, 동네 인문여행 사업을 하며 이외 다양한 지역 콘텐츠를 발굴 탐구하는 비영리 문화 단체이다.


이즈음의 ‘철학’이라는 주제는 아무 단어 앞에 수식어로 쓰일 만큼 가볍기도 하다. 하지만 ‘철학’이라는 주제는 결코 가벼운 주제가 아니다. 더군다나 ‘일상’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면서 이야기는 쉽게 갈래 지우기 어려운 상황이 된다.


‘철학’이 아무 주제 앞에 수식어로 쓰인다는 것은 ‘철학’이 모든 주제의 바탕을 이룬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만큼 깊고 동시에 넓은 영역이 바로 ‘철학’이다. ‘철학’이라는 망망대해를 한두 시간 만에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사실은 비 상식이다. 거기다가 ‘일상’이라는 주제가 더해지면서 이야기는 좀 더 어려워진다. 강의 부탁을 받고 사실은 많이 망설였다. 자칫 이야기가 주제와 관계없어지거나 또는 엉뚱한 이야기로 빠질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결정적으로는 강의하는 나의 능력이 변변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거절하기에는 이미 늦었고 날짜는 다가오니 뭐라도 준비를 해야 하는데 무슨 이야기를 화두로 꺼내는 것이 좋을까 여러 날을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결국 ‘일상’이라는 말에 방점을 두고 이야기를 풀어내기로 마음먹고 이야기를 만들었다.


몇 해 전 나는 스스로 일상을 이렇게 규정했다. “먹고 자는 생리적 현상으로부터 출발하는 일상성은 그 생리적 작용의 배후에 존재하는 것들을 충족시키는 활동으로 이어진다. 이를테면 먹는 것을 위한 경제적 활동과, 경제적 활동으로 획득한 자본으로부터 먹는 재료의 구매, 그리고 실제 재료의 조리까지의 모든 조작적 활동을 바탕으로 한다. 거기에 장소의 획득과 분배에 대한 주체적 개입과 객관적 갈등의 단계를 거쳐 주관적 생활공간을 점유하는 그 모든 정치적, 문화적, 경제적 과정이 일상성의 배후이자 동시에 일상성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일상성의 공간은 곧 삶의 공간이며 또 사유의 공간이다.”


자 이렇게 말하고 나니 철학이라는 수식어를 놓을 수 있는 여지가 보인다. 이야기는 4가지 주제로 나누었는데 “1. 존재와 일상, 2. 내부의 문제, 3. 외부의 문제(보는 것과 보이는 것), 4. 통찰, 변화, 수용”이었다. 가능한 쉽고 불편함이 없는 용어로 설명드리고자 했지만 나의 한계가 분명 있는지라 나의 내부에서 녹이지 못하는 단어들과 개념들이 너무나 많아 의도치 않게 수강자들에게 혼선을 주었을 것이다.


우리가 ‘일상’을 다만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그것이 얼마나 위대한 철학적 행위인지를 수강자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물론 그 ‘일상’의 세부적 조건은 개별적으로 다양하고 복잡하지만 하루를 버티며 나아가는 일이야말로 철학적 기초 없이는 너무나 곤고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불행하게도 ZOOM이라는 공간은 수강자들의 반응을 확인할 수 없다. 대면이었다면 재미있게 분위기도 만들고 서로 물어보고 대답하는 것이 자연스러웠겠지만 가상의 공간에서는 그 모든 것이 부자연스럽고 더디게 일어났다. 2020년 이 땅의 모든 선생님들이 이러한 어려움을 뚫고 수업을 하셨다고 생각하니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혹시 다음이라도 기회가 생기면 그 대는 대면 강의였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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