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에코, 대학, 걱정.

by 김준식

스위스 출신의 언어학자 소쉬르(F. Saussure)에 의하면 언어는 하나의 기호체계이다. 기호란 다시 기표(記標, Signifiant - 시니피앙)와 기의(記意, signifié - 시니피에)의 결합이라고 했다. 기표(signifiant)란 기호 중 감각으로 지각되는 소리를 이야기하고, 감각의 뒤에 존재하며 지각할 수 없는 부분을 기의(signifié)라고 부른다. 따라서 소쉬르는 언어를 기표와 기의를 동시에 가지면서 감각과 그 이면에 존재하는 인간 의식의 결합체로 보고 있다.


이러한 소쉬르의 이론에 따른 일련의 학문을 현대 기호학이라 부르고 현대 기호학의 위대한 학자이자 소설가 그리고 르네상스적인 인물인 이탈리아 출신 Umberto Eco(움베르토 에코)가 오 년 전 오늘, 영원한 삶의 도서관에 한 권의 장서가 되어 안식에 들었다. 그의 책 “장미의 이름(Il nome della rosa)”은 영화로도 만들어질 만큼 유명한데 여기서 장미는 바로 예수, 혹은 성모를 상징한다. 즉 장미라는 단어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모습을 가리키는 시니피앙과 예수를 상징하는 시니피에의 결합인 셈이다. 장미의 붉은색은 예수의 붉은 피로 해석되고, 꽃 잎이 다 떨어졌을 때 남은 꽃받침이 예수의 상처(손, 발 각각 두 곳과 가슴 한 곳, 모두 다섯 곳의 성흔 ; 스티그마타) 다섯 곳과 같은 오각을 이루고 있어 그렇게 인식되었다고 전해진다.


에코의 최종 학력은 토리노 대학교 학사이다. 우리나라 기준으로 하면 석사도 아니고 박사는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그는 세계적인 석학이며 그 누구도 그의 학문적 위상을 무시하지 못한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대학이 모든 교육의 종착역이 되고 동시에 취업의 스펙이 된 우리나라와 비교해 보면 참으로 안타깝고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독서를 통해 지식을 습득하고 그 지식의 내용을 철저하게 내면화하는 작업을 통해 새로운 생각으로 성장시켰노라고 고백했다. 즉 독서보다는 독서 후의 고민과 내면화가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대학은 우리와 매우 다른 대학 제도를 가지고 있다. 이탈리아의 대학은 백만 이상의 학생들이 다니고 있으며, 6만 이상의 교수가 있고 50여 개의 대학이 있다. 이탈리아에는 College는 없으며, 대학은 몇몇 학과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모든 학생들에게 입학을 허용하는 개방 대학이다. 교수들의 수준은 거의 비슷하고 학위의 가치도 대학 사이에 동등하다고 볼 수 있다. 학부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국립대의 수업료는 매우 저렴하여 1년에 500~800 euro 정도이다.(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일 년 동안 200만 원이 넘지 않는다.) 이탈리아 대학에는 대학생과 대학원생의 구분이 없다. 모든 연구는 기술상 대학원 공부로 간주한다.


대학 과정은 학부에 따라 4년에서 6년이지만, 일반적으로 문리대는 4년, 건축은 5년, 의대는 6년 정도이다. 이 외에도 코스에 따라 Breve Laurea(준 학사), Crso di Specializzazione(전문화 과정), Corso di Perfezionamento(석사 과정)의 3가지 유형의 졸업장이 있다. 이탈리아 대학은 입학하기는 쉽지만 공부하기에는 상당히 어려워서 학생들의 첫해 낙제율은 40~55%에 이르며, 최근 입학생의 큰 증가에도 불구 학위를 받는 학생의 수는 그다지 늘고 있지 않음은 졸업하기가 상당히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탈리아 대학제도가 갖고 있는 특징 중 하나는 학위제도가 우리나라와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미국식 제도를 따르고 있는 우리나라 대학에서는 학부 과정(4년)을 마치면 학사 칭호를 받게 되고 이후 대학원에 진학하여 석사(2년), 박사(3년) 과정을 단계적으로 이수하고 논문이 통과되면 석·박사 칭호를 받게 되지만, 이탈리아의 경우, 대학에서 4년 과정을 마치고 논문이 통과하면 dottore(영어 doctor)라는 칭호를 받는다. 물론 이탈리아에도 이 과정을 마친 뒤 진학할 수 있는 여러 과정들이 있으나, 그것들은 우리의 석, 박사 과정처럼 일정한 수업기간과 그에 따른 칭호 등이 정해진 것이 아니다. 졸업을 위해서는 20여 과목 시험과 과정 수료 후 논문 통과자에 한하여 졸업할 수 있다. 따라서 내국인들조차 4년 과정을 4년 만에 마치기는 어려우며 보통 5~6년 만에 마치고 심지어는 10년이 걸리는 사람도 있다. 학교 성적은 취업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이탈리아의 대학 교육은 현재 우리나라 대학의 난맥상과 비교되는데 이러한 교육이 유지되는 것은 국민 전체의 의식과 국가의 제도적 보장, 그리고 사회 구조의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한 제도일 것이다. 에코의 죽음을 통해 우리는 그의 위대함이 결코 좋은 학벌이나 배경이 아니라 끊임없는 자기 혁신과 노력,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제도와 의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정치지도자들이 해야 할 일은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가 어디에 있고, 어떻게 그 문제를 풀어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어야 하는데 자신들의 권력과 그로부터 비롯되는 각종 이권에 눈이 멀어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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