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망, 토마토, 오이, 양상추, 가지 따위를 씻어 트레이 위에 올려둔다. 물기가 남아 말개진 얼굴들이 예쁘고 앙증맞다. 레몬수로 잘 닦아둔 도마에서는 나무의 건조하고도 부드러운 냄새가 나고 창문 곁의 바질화분에는 하얀 꽃봉오리가 맺혀 있다. 마늘을 얇게 썰어내기 전. 숯돌 위에서 서겅서겅, 예리하고도 맑은 소리를 내는 부엌칼은 사랑하는 동기들이 선물로 준 것이다. 노란빛이 조금 바래긴 했지만, 앞치마는 여전히 내게 단정한 마음가짐을 선물한다. 지금 나는 주방에 있다. 볕이 환하게 드는 공간. 벽은 하얀색 타일로 뒤덮여있고 중앙에는 희고 반듯한 4인용 식탁이 순하게 웅크려 있다.
예전부터 요리가 취미였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얼마 전까지의 나는 일하기 위해 먹는 사람이었다. 식사시간이란, 촬영을 하다가 급하게 밥과 국을 밀어넣고 다시 촬영장으로 돌아가는 틈새에 불과했다. 하루에 촘촘히 박음질된, 일이라는 문양 사이의 희미한 틈. 그 좁은 틈새에 나는 많은 걸 구겨넣었다. 가족, 글쓰기, 책읽기, 친구들 만나기. 그 외에는 모두 일이었다. 흔히들 말하는 워커홀릭 말이다. 그 때는 뭐랄까. 해내는 내가 의미있어 보였고 그런 내가 좋았다. 오로지 일하는 나만이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십년을 살았다. 고장이 났다. 샤워를 하다가, 길을 걷다가, 커피를 먹다가도 그냥 울음이 터졌다. 경과가 심각해서 정신과에 갔고 중증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약을 삼킨 날이면 종일토록 쇼파에 앉아 창밖을 봤다. 맑은 하늘이 붉어지고 이윽고 새파랗게 질려가다가 감겨갈 때까지 말이다. 그러다 베란다에서 떨어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슬프거나, 괴로워서가 아니었다. '힘들었네. 퇴근해야지' 처럼 그저, '힘드네. 관둘 때두 되었지.' 그렇게 베란다 창문을 열었다.
미쳤구나. 아득한 높이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앉았다. 한심했고 무서웠다. 차가운 생각과 감정이 나를 지배하는 상황이 말이다. 세상이 아무리 힘들어도 냉소를 품고 싶지는 않았는데.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누가 알려준대로 멀고 넓게 바라보았다. 집앞 대형마트에서는 사람들이 장바구니를 한아름 들고 걸어다니고 있었다. 식당들과 술집들이 옹기종기 모인 상가지구가 보였다. 허공에서 구수한 냄새가 났다. 윗집이나 아랫집에서 청국장 찌개를 끓이는 모양이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려서 먹던 청국장 찌개, 그거 어떻게 끓이느냐고. 엄마는 태연히 그런 청국장은 어디에도 없다 말했다. 갑자기 그게 생각이 나냐고.
"어. 갑자기 엄청 먹고 싶네." "외할머니가 없잖아. 네 외할머니가 직접 만들던건데. 이제 못 먹지."
나는 베란다에 쪼그려 앉아 엄마랑 간만에 긴 통화를 했다. 모두 외할머니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래 현아. 아무리 바빠도 밥 잘 챙겨먹고. 드라마 준비 때문에 올해도 오기 힘들겠제? 외할머니 산소에 같이 한 번 가면 좋을 텐데."
전화를 끊고 배달앱으로 청국장을 주문했다.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온 음식은 내가 기대했던 냄새를 풍기지 않았다. 식탁에 앉아 국과 밥을 삼키면서 조금 울었다. 그래도 꾸역꾸역 삼키면서 살자는 다짐을 했다. 살려면 많은 걸 바꿔야 했다.
나는 환자였다. 내 주변을 둘러보고, 나를 지치게 했던 패턴을 점검하고 모두 멈춰버렸다. 회사에선 의아해했지만 설명할 수도, 설명하고 싶지도 않았다. 내게 압박감을 주는 모든 것이 독약이었다. 일을 최소화했다. 아침에 깨 청소하고 청소가 끝나면 산책하고 음악을 듣고 글을 쓰며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현관에 엄마가 보낸 택배가 도착해있었다. 김치와 장아찌, 각종 마른 반찬들. 그리고 저 아래쪽에 비닐에 쌓여진 청국장 두 덩어리.
"엄마가 느그 외할머니 생각나믄 가끔 사서 먹는 집이다. 같진 않은데 그래두 이 집 청국장이 제일 비슷하드라. 한시간도 더 가서 사왔다."
전화를 끊고 나는 그 중 한덩이의 비닐을 벗겼다. 찰흙처럼 무르고 끈쩍끈적하다. 다음 차례. 마른 멸치로 육수를 내고 그 물에다 청국장을 푼다. 찌개가 끓기 시작하면 연한 두부 반모와 갓 사온 파의 흰부분을 송송 썰어넣는다. 그걸로 끝. 기억하던 냄새가 났다. 짠기없이, 숙성된 콩의 깊은 냄새로만 이루어진 청국장. 숟가락으로 청국장을 크게 떠내어 방금 안쳐낸 쌀밥에 올린 후, 콩과 두부를 슥슥 으깨 비빈다. 구수한 콩의 깊이가 쌀의 달디단 베이스에 스며, 영혼 속으로 힘을 불어넣는 한 입이 된다. 메주를 쑤고, 곶감을 건조시키는 가을날. 마른 짚냄새와 달달한 과일냄새, 오래된 외양간의 암모니아 냄새가 스며오는 신원 대현리의 외할머니 집. 무릎에 누워 맡던 할머니의 풀냄새, 흙냄새, 그리고 고소한 기름냄새 같은 것. 그런 게 목구멍 속으로 왈칵 쏟아진다.
맘에 고인 냉소가 녹고 있는 듯 했다. 나는 차가운 사람이 아니잖아. 차가워지지 말자 재현아. 돌이켜보니 내게 가장 따뜻한 기억은 언제나 주방에 있었다. 현아. 밥 먹어라. 식탁을 향해 달려가면,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일은 뭘 할 것인지, 어른이 되어서 어떤 멋진 일을 해낼 건지. 나는 침을 튀겨가며 떠들었다. 얼마를 받는지, 얼마나 빨리 끝낼지, 어느 정도의 예산이 필요한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그런 쓰나미처럼 높고 감당하기 힘든 이야기들과는 다르게.
그 때 맘을 먹었다. "밥을 먹는 것" 그 이상의 행위를 하자고. 주방을 둘러봤다. 오랫동안 쓰지 않은 식기들. 말라붙은 개수대. 식탁에서 풍기는 건조한 세재냄새. 그리고 그런 냄새들을, 청국장 냄새가 밀어내며 집을 덥히고 있었다. 따뜻한 집을 만들자. 그럴려면 집안에 늘 음식냄새를 풍기게 하자. 먹는다는 건 살아가겠다는 것이고, 그저 나를 먹이기 위해서 재료를 찾고, 음식을 만들다보면 나는 결국 내가 뭘 좋아하는지 들여다보게 될 것이었다. 그러니까 요리란, 나를 표현하여 타인을 듣는 일이다. 나는 나를 말하고 또 나를 들을 필요가 있다.
그렇게 일년 정도가 흘렀다. 다진 피망과 파낸 가지속을 돼지고기를 함께 볶아내는 사이, 깨끗이 씻은 양상추 위에 방울토마토와 올리브, 보코치니 치즈를 얹고 발사믹을 뿌린다. 피망, 가지, 돼지고기 볶은 것을 다시 가지에 채워 에어프라이어에서 140도로 10분을 익힌다. 이제 식탁에는 건강한 보코치니 토마토 샐러드 한 접시와 가지구이가 나와 있다. 나는 이제 나를 부른다. 현아, 밥 먹자. 하고.
오롯이 나를 위한 정성스런 요리를 먹으면서, 나는 나에게 쫑알댄다. 좀 싱겁지 않아? 가지요리에는 어떤 향이 더해지면 좋을까? 가지껍질이 여전히 질긴 편이지? 샐러드엔 발사믹 말구 올리브유만 뿌릴 걸 그랬어. 그치?
그리고 묻는다. 오늘은 어땠어? 나는 흰 이를 드러내며 대답한다. "정말 맛있는 하루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