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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주 Aug 06. 2024

주방일지2

나는 두부를 존경한다



두부를 존경한다. 좋아, 아니고 존경. 제대로 쓴 게 맞다. 두부는 정말 배울 게 많은 재료다.

마마두부를 따라하려다 실패했다

두부라는 음식이 각인된 건 아마 초등학교 1-2학년 즈음이었다. 마늘기름, 고춧가루, 간장을 더한 양념 졸여낸 두부 요리. 훗날의 내가 <마마두부>라고 부르는 그것.  때만 해도 마마두부는 날 위한 음식이 아니 엄마 자신을 위한 음식이었다. 매울까 걱정하는 엄마의 만류에도 기에 도전했던 이유는, 엄마의 맘을 이해하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입안을 가득 채우는 고소하고도 담백한 질감. 그 식탁에 있었던 이들의 증언(그래봤자 엄마겠지만)에 따르면, 그 때부터 나는 <마마두부>를 좋아했다고. 왜 마마두부냐고? 마파두부 같은데 마파두부는 분명 니고, 그냥 두부조림이라고 하기엔... 음. 엄마표 조림에서만 풍기는- 와 마늘깊은 풍미가 있. 그래서 내가 붙인 이름. 마두부- 바 내 인생의 첫두부다.


그렇다. 그 시절, 나는 이미 두부에 사로잡힌 것이다. 그러니 여행지 곳곳에서 두부요리 찾아다니는 게, 내겐 그리 이상한 일 아니었다. 오사카, 후쿠오카, 교토에서, 방콕에서, 나트랑에서. 또 유럽의 어딘가, 아시안 레스토랑에서도. Tofu라고 적힌 메뉴 찾아다녔다. 그 지역의 유명한 음식보다 두부가 그 지역에서 어떻게 해석되는지가 궁금했다. 그렇게 삶고, 찌고, 튀기고, 부치고, 조리고, 끓이고, 삭힌 여러 조리법의 두부를 렵해갔다.


나의 요리생활에 두부 자주 등장했던 건, 이런 맥락 때문이다. 간혹 과감한 레시피를 사용할 수 있었던 것도 내가 두부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까닭이리라. 물론 성공률과는 별개다. 이는 내 요리실력이 좋아서라기보다 두부가 품은 안정적이고 너그러운 성격 때문이다.


어떻게 조리를 하든 근본적으로 두부는 부드러운 음식이다. 재료 본연의 향이나 색이 강하지 않아서 다양한 요리로 확장된다. 마파두부처럼 강한 향신료로 두부를 덮을 때도 있고, 두부김치처럼 곁들일 때도 있고, 히야앗코처럼 파와 간장만을 쳐서 차고 담백하게 먹는 방식도 있다. 신기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부는 너무 선명하게 <두부>라는 것이다. 양념의 방식이 뭐든, 곁들인 게 뭐든. 마지막 목넘김에서 두부요리는 결국 선명한 두부로 남는다.


그래서 두부는 강하다. 외유내강이랄까. 무협지로 치면 무당파의 태극(유로 강을 제압한다!)에 가깝다. 양념의 맛에 휩쓸린 듯이 보이나 담백한 내면은 한점의 침투도 허용하지 않는다. 단단하다. 그러면서도 양념과, 다른 재료들을 조화롭게 품어 돋보이게 만든다. 겸손하고 너그럽다.


맵-짠---씀으로 복잡한 우당탕탕 미식 속, 열불 터지는 파, 마늘, 고추들에게 슬그머니 괜찮다 말해준다. 속과 겉이 참으로 똑같은 흰 두부의 넓고 푸근한 품에 안기면 고추의 성급함엔 신중함이 깃들고, 마늘의 표독함엔 우아함이 생기고, 파의 이중성은 입체감으로 변모한다.


두부는 모든 재료들의 말을 경청하고 그들의 개성을 존중한다. 모두가 뛰어놀 수 있는 광장이 되어주지만, 자신을 결코 잃어버리지 않는다. 이런 재료가 중심이 되면 요리는 실패하기 어려워진다.


두부를 먹으며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두부의 속성을 품고 싶다고. 순한 맛으로 사람들을 품으면서. 덜 싸우고 더 다정하게 모두를 이끌면서도 내 존재를 지켜낼 수 있다면. 그렇담 지금보단 자주 행복할 수 있을 텐데. 체어게임을 하지 않아도, 순위와 등급을 매기지 않아도, 오만과 편견, 질투와 열등감 없이도 모두가 수평적으로 서로를 인정할 수 있다면. 내가 그러하지 못하니, 두부같은 사람의 곁에 머물 방도를 찾아본 적도 있다. 하지만 도파민과 자극이 일등이 된 요즘 같은 시대에, 두부인간을 만나는 일은 아주 요원해져버렸다.


그러니 두부를 또 꺼낸다. 도마 위에 올려놓고 곰곰 생각한다. 계란? 고추장? 소고기? 간장? 마늘? 파? 튀김? 피망? .... 어쩜 이렇게 모든 걸 상상해도 모든 게 적용되는 재료가 있을까. 그런 발상으로부터, 다시 한 번 두부의 이타심에 존경을 느낀다.


 "나는 괜찮아. 네가 어떤 맛을 원하든, 다 받아줄게."


도마 위에 올려진 두부는 퉁퉁한 넉살을 부리며 유쾌하게 웃는다. 삶의 모든 부분이 다 아름답고 즐겁다는 듯이. 하얗고 탱글거리고 유머러스하다. 두부는 이어 말한다.


 "재료의 뾰족한 곳이 그들의 가장 사랑스러운 부분이야."


맞아. 넌 뭐든 받아주지. 그러니까 오늘은 너를 주인공으로 쓸 테야. 가장 순수한 네가 느껴지게. 두부를 접시 위에 올린다. 가쓰오부시랑 멸치, 새우가루, 조개 등등을 넣고 끓인 해물육수를 차게 식혀 붓는다. 거기에 김가루와 파조각을 뿌린다. 한쪽에 약간의 와사비만 짜두고 숟가락으로 슥 베어먹는다. 며칠 전 친구에게 선물받은 깔끔한 정종 한 잔을 들이키면 오늘의 요리 끝. 어쩜 이토록 순하고 깊은지. 고소하고도 선한 마음을 품었는지. 두부의 베어진 단면을 바라본다. 뚝 잘려진 상처에서도 맑은 표정을 짓는 두부. 물컹물컹 내 몸에 스며들여서 내게도 그 강함을 불어넣어주길.

가쓰오부시 육수로 만드는 냉두부는 여러 형태로 변형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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