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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주 Aug 12. 2024

주방일지3

달디단 여름낮, 맵디매운 여름밤


포항 시골집의 텃밭에서, 모닝 더메이더와 함께

여름은 감정이 오른다. 해는 뜨겁고 냄새는 축축하다. 모든 것이 분주하게 번진다. 수박, 포도, 복숭아, 자두는 손과 입술로 넘쳐흘러 식탁 전체를 끈적대게 만든다. 감자, 옥수수 같은 구황작물은 무른 흙 속에서 잔뜩 부드러워져선 씹다보면 입안 가득 처럼 뭉게거린다. 한여름의 밭으로 가자. 토마토는 싱그럽고 상쾌하다. 밀짚모자를 쓰고 막 딴 가지를 슥슥 옷섶에 닦아 씹으면 꿀을 품은 사과꽃 향기가 난다. 반면 더위가 쨍쨍해질수록 고추는 점점 매워진다. 먹으면 아무리 행복하다가도 화가 난 사람처럼 바둥거릴 수 있다. 여름은 렇게 모든 생명의 개성을 최대화하는 계절. 


여름, 제는 나의 우울도 대화된다는 거다. 공갈빵처럼 실체도 없이 부푼다. 그런 나를 위해 주방에서 만든 많은 요리들이 있. 재료도 조리법도 제각각. 그 모둘 적을 순 없어서 고민하다가 그 모든 요리를 묶어주는 두 가지의 맛에 대해적기로 했다. 달디달거나 맵디맵거나. 


단 맛. 무화과를 빼놓을 수 없다. 가을 무화과 농축되어- 깊은 곳으로 툭, 내리치는 단맛이다. 반면 여름 무화과는 발랄하고 산뜻하고, 가볍다. 혀를 무대삼은 탱고와 왈츠랄까. 그래서 슬픔이 줄줄 흐르는 여름이면, 입안에 왈츠를 넣어줄 필요가 있다. 경쾌해지자. 달디 달게. 통통 튀는 슬픔을 갖자. 그런 느낌으로다가 여름의 횡단보도를 숭겅숭겅 건너 어디나 있을 법한 베이커리를 향한다. 그 길, 스텔라장의 <사랑 바게트 파리> 들으면서 뛰면, 곧 발음할 한국에 불어의 기세를 실을 수 있다.


"안녕하세요. 봐겟흐 주세요. 네 썰어주세요. 파휘."


그렇게 바게트를 사서 말갛게 씻긴- 보라와 노랑과 초록이 뒤섞인 무화과 곁으로 돌아간다. 바게트에 올리브유와 메이플 시럽을 뿌려 오븐에 구워내는 사이 무화과를 사등분한다. 붉은색 과육의 모양이 꼭 필리핀 바다에서 스노쿨링을 하다 본 산호초들 같다. 이제 다 구워진 바게트 위에 크림치즈를 살짝 바른다. 취향에 따라 잔뜩 발라도 상관없다. 하지만 볼터치 하는 기분으로 살짝 바르는 게, 뭣보다 경쾌하거든. 마지막으로 잘라낸 무화과를 얹으면, 비로소 무화과 브루스게따.


베어문다. 바삭, 소리랑 같이. 그건 흡사 여름 땡볕에 잔뜩 익은 흙을 밟는 느낌. 이내 따라온다. 메이플 시럽. 작년 가을에 잔뜩 떨어진 낙엽들이 봄과 여름을 거쳐, 흙에 풍성하게도 스몄구나. 피어난다. 작고 앙증맞은 것들이 잔뜩 뭉쳐서는. 여름이면 흐드러지는 석죽과 식물처럼. 크림치즈가 혀 위에서 안개꽃으로 숨막히는데, 그 위에서 무화과는 루비가 잔뜩 달린 옷을 입고 춤추는 여름 무희다. 냉장고에 차게 식혀둔 샹그리아까지 곁들이면. 나는 기분이 솜사탕처럼 가벼워진다. 이 담에는 비밀스런 취미가 발동한다. <짜라빠빠> 켜놓고 율동 따라하기. 프랑스 사람도 이탈리아 사람도 아니어서 음악도 이국지좀 느글거린다. "뉴욕- 콘크리트 정글~" 듣다가도 "경기도 구리- 저건 뭐야 예초기히~"로 돌아오는 메타인지 정돈 갖출 나이가 됐다.


웬만하면 이 과정을 늦은 오후가 오기 전에 해야한다. 그러면 나는 강해진 채 노을과 밤을 즐길 수 있고, 우울은 새벽도 흔들지 못할 만큼 나약해진다.

심혈을 기울였다. 사진 프레임 바깥에 실패작이 가득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슬픔이 가벼워지지 않는다면, 별 수 없지. 이제는 분노할 차례다. 사랑이 찾아오면 모든 게 해결되겠지만 그런 건 쉽지 않은 일. 아니. 사랑이 찾아와도 마찬가지다. 속절없이 맘이 끓어올라서 그저 화를 내고 싶을 때는 나이가 들수록 많아지는 법이지. 내가 많이 고장났나 싶다가도, 자학하지 말자고 맘을 고쳐먹는다. 화는 현대인의... 디폴트니까. 헐크도 말했거든. 사실 자신은 늘 화가 나 있다고. 물론- 그럴 땐 화를 내는게 맞다. 하지만 텅 빈 집에서 혼자 그러구나면 심각한 현타가 몰려오기 때문에, 나는 매운 요리를 한다.


"굳이 굳이 시장의 방앗간에 가, 직접 빻은 엄마의 고춧가루"를 그 때 쓴다. 향만 맡아도 알 수 있다. "굳이 굳이 밭에서 직접 딴 여름 땡초" "굳이굳이 엄마가 직접 싸서 보낸" 그런 문장을 거듭 반복한 엄마의 이유를. 여름밤 모기처럼 귀에 왱알대는 <굳이>와 <직접>이라는 단어의 힘을 느낀다. 살짝 찍어먹어본다. 화가, 분노가 치민다. 엄마도 화가 났겠지. "네가 뭐 된다꼬 적당히 보내라카노? 땀 쫙쫙 빼가며 얼마나 되게 한긴데 입 닥치고 걍 감사합니데이~ 하고 쳐무라." 엄마가 <굳이> <직접> 보낸 고춧가루에는 그런 엄마의 화가 꽉꽉 눌러담겨 있다. 자신의 노고에 호락호락 찬사를 보내지 않는 아들을 향한 반발심이다.


고춧가루를 우르르쾅쾅 뿌려서 오이를 무친다. 고춧가루를 우당탕탕 뿌려서 매운갈비찜을 만든다. 아. 잠깐. 이 메뉴에서 빼먹은 게 있다. 마늘. 여름마늘도 빠질 수가 없다. 마늘만큼은 내가 엄마에게 제발 좀 구해달라고, 더 보내달라고 부탁하는 유일한 것이다. 마트에서 사도, 인터넷 산지직송을 해도 그 맛이 안 난다. 엄마의 마늘은 "쪽수 많다고 다 이기는 거 아니다"는 걸 정확하게 알려준다.


가을에 심어 이듬해 여름에 수확하는 게 마늘이다. 마늘은 쪽수가 많을수록 맛이 떨어진다. 쪽수를 줄이려면 씨마늘을 계속 심어줘야 하는데 그러기엔 값이 비싸져서, 대량유통을 하는 곳에서는 구하기가 쉽지 않다. 의성마늘 산지직송. 그런 곳을 찾아 주문해봐도 알맹이 크기 보면 육쪽이 아니라 열두쪽쯤 되는 것 같다. 근데 엄마는 그 구하기 힘들단 육쪽을 기가 막히게 찾아온다. 대체 이런 마늘을 어디서 구하냐 물으면, 시장 가면 다 있다고 한다. "없던데." 그러면 픽 웃으면서, "서울이 그릏제 뭐." 한다. 츠아암내. 코웃음 친다. 좋은 건 다 서울에 있고 서울로 몰려오는 시절인데. 대한민국이 서울공화국이 된지 언젠데. 서울사람은 아니어도 서울과의 인접성을 자랑으로 두는 경기도민으로서 잠시 반발심이 치민다. 하지만 서울에서 구하기 힘들 게 있다는 사실에 이내 지방인뿌리 실거린다.


암튼 육쪽짜리 마늘. 땡초 고춧가루. (경상도에서는 청양고추를 땡초라고 부른다. 왜 그런진 모르겠지만 어감이 기가 막히다. 먹으면 땡초! 하는 그 매운맛. 거의 감탄사 같다.)  그리고 안 신선한 돼지갈비. 이를테면 냉동. 그게 값도 싸고 좋다. 돼지잡내는 육쪽마늘의 은은한 킹받음과 땡초의 빡침포인트로 싹 덮을 수 있다. 여기에 간장만 더해도 그 유명한 대구의 맛, 동인동 매운갈비찜이 가능하다. 우선 해동한 돼지갈비를 끓는 물에 삶아낸다. 냄비가 끓는 인덕션 근처를 서성대면서 핸드폰으로 유튜브 보다가 젓가락으로 찔러보고, 됐다 싶음 꺼내면 된다. 성공하고 싶으면 정확히 삶는 시간을 검색하면 되지만, 그러면 뭐랄까. 갬성이 없는 느낌이다. 참. 중요한 게 있다. 유튜브 보면서 낄낄대다가거품은 걷어줘야 한다. 이유는 잘 모른다. 대한민국 주입식 교육의 폐해랄까. 이 부분은 좀 아이러니한데, 거품을 걷는 게 걷지 않는 것보다 갬성적이다. 주입식 교육에도 마음이 겨있다.


이제 물을 버리고 고기만 남은 냄비에 고춧가루를 으랏차으어차 붓는다. 하지만 마늘은 다르다. 마늘은 붓는다는 생각으로 넣으면 안된다. 살다보면 실수를 의도할 때가 있는 법. 스텝 원. 일주일 뒤 "엄마, 나 그 귀한 마늘을 실수로....!" 하고 전화하겠단 다짐을 하자. 스텝 투. 다진마늘 그릇을 "어이쿠야!!" 쏟아야 한다. 다진 마늘이 점성 때문에 떨어지지 않으면...... 어쩌지 어쩌지 하면서, 쓸어담는 척 숟가락질을 하자. 혼자일수록 해야 한다. 그래야 죄책감이 덜 든다. 자기자신을 속일 수 있다.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보다 "사랑에 빠진 거, 실수였어...."가 거든. 불륜 얘기 아니고 마늘 얘기다. 물론 뭘 선택하든, 엄마는 "하이고 니는 마늘 못 먹고 죽는 구신 들었나?" 하는 면박을 쏘아대겠지만. 그래도 마늘만 온다면야 .


거기에 간장도 치고. 엠에스지도 뿌리고. 건 취향대로. 단 양념이 고기에 묻을 만큼만 지져내야 한다. 볶는 느낌으로다가. 그렇게 요리가 완성되면, 찬장 가장 바깥쪽에, 조금 짜그러진 채 있는. 비유하자면- 같이 다니면 내가 좀 잘나보인다는 느낌을 주는 (그놈도 나를 그렇게 여기겠지만) 내 부랄친구 한상이처럼 생긴 양은냄비를 꺼낸다. 한상이같이 짜그러진 냄비에 나처럼 화끈한 매운찜갈비를 예쁘게 담으면 완성.


아까 담은 오이무침. 찜갈비. 거기에 도무지 비법을 알려주지 않는 엄마의 고추물을 꺼내 흰 쌀밥 한그릇을 더하면 끝이다. 이걸 먹고 나면


"와 진짜 이런 씨마늘!!! 세끼 쌉가능!! 와 이런 쒸이마늘이!!!"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렇게 허겁지겁 우울에 젖은 맘에 매운 맛이라는 뜸치료를 한다. 그 뜨끈뜨끈한 기운에, 식탁은 시린 맘을 지지는 온돌이 된다.


고추의 고는 고통할 때 고자다. 매운맛 자체가 미각이 아니라 통각이기도 하다. 그리고 부처님은 인생은 원래 고통이라고 말씀하셨다. 새파란 우울이 맘에 스미는 저녁. 식탁 위에 불처럼 뜨거운 빛의 요리들을 깔아두고, 홀로 호들갑을 떨며 매운걸 때려붓는 일은, 트라우마, 상처, 번아웃 따위로 꽉 막힌 내 감정의 수챗구멍을 청소하는 일이다. 고추의 매운맛에 헉헉대면서, 것봐 너 살아있잖아. 마늘의 알싸함에 킁킁대면서, 것봐 다 느끼잖아. 어디에다 화를 낼지 모르니 매운맛에 화를 내면서, 나는 나를 킹받게 한다. 잘 나오지 않는 눈물 대신 땀을 흘린다.


이윽고 양념이 잔뜩 묻은 그릇을 설거지하며 나는, 나같은 여름을 견디는 이들의 노래를 튼다.


마라탕탕탕탕 후루루루루-

내맘이 단짠단짠 아그작, 후!


하루가 유독 긴 여름, 새파란 우울이 맘에 쌓이면 내 주방에서는 그토록 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참으로 환한


".....여름이었다." 그런 갬성으로 찰칵, 했던 지난 여름을 마지막으로 남긴다. 친구들과 함께 하는 여행, 농담, 웃음은 언제나 희망을 다시 믿게 한다. 그리고 요리는 우리를 결국 한 자리에 모이게 한다.

감정적 우울에 빠진 나를 위해 물질적 우울에 빠진 친구들이 함께 시골집을 향했다. 음악, 그림, 요리를 하는 친구들이다. 친구들아. 그래도 꿈을 간직하고, 우리 모두 행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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