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끓이는 요리에 대해 생각하면 생각나는 풍경이 있다. 가마솥, 장작, 하늘의 구름이 다 여기서 나온거구나 싶을 만큼 뭉게뭉게 피어나는 흰 연기. 외할아버지가 큰 붕어를 밤새 끓이던 날이었다. 열병을 앓는 엄마는 안채에 누워있고 갓 다섯살이 된 나는 불쏘시개로 아궁이의 잉걸불을, 신비한 그림이 숨어있는 동화책처럼 들춰대고 있었다. 외할비가 말한다.
현아, 나와봐라.
무심히 말씀하신 외할아버지가 큰 행주를 쥔 채 솥뚜껑을 열었다. 어젯밤엔 분명 맑은 물과 잉어가 있었는데. 오늘 아침엔 뽀얗고 깊은 크림색의 국물이 보글보글 끓고 있다.
며칠간을 그랬다. 끓이고 먹이고, 끓이고 먹이고. 흰 국그릇에 뽀얀 잉어탕을 한국자 떠서, 외할아버지는 엄마에게 가져갔다. 이윽고 열꽃이 진 엄마의 얼굴이 호수처럼 잔잔해진 채다. 어린 나는 땀이 송골송골 맺힌 엄마의 이마에 손을 짚었다가 그녀의 옆구리를 파고 들었다. 시큼하지만, 아련한 땀냄새가 났다.
돌이켜보면. 외할아버지는 밤새 아궁이의 불을 지켰을 것이다. 그 불은 온돌을 뎁혀 오한에 떠는 엄마의 몸을 녹이고 잉어를 삶고 부스러트려, 다시 엄마의 몸에 뜨겁게 스몄을 것이다. 그 후로도 엄마의 주방을 떠올리면, 큰 곰솥을 놓고 내게 곰탕을 끓여주는 모습이 가장 뚜렷하게 떠오른다.
오래 끓이는 것에 대해 물었을 때 엄마는 내게 말했다. "불이 쎄믄 안된다. 천처히, 오래 끼리야 된다." 그 요리가 무엇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내게 각인된 건, 하나다.
'약불에, 오래 끼리는 것.'
벨이 울린다. 주문했던 사태와 양지, 스지가 도착했다는 뜻이다. 사태는 소의 앞다리 윗쪽, 양지는 소의 앞가슴과 윗배 쪽의 부위다. 코어라 불리는 그곳. 소의 생활을 뒷받침하는 근육. 짐승의 일상에서 뛰고 일어나고 구부리고 돌고 투레질 하는 동작을 가능케 하는, 그래서 질기고 단단한 부위. 근육조직이 단단해 지방이 끼어들 틈이 드물다. 이런 걸 생각하면 어쩐지 재료와 조리법, 그리고 삶은 모두 하나로 묶여있는 것 같다. 오래 산 짐승들은 질기다. 오래 산 마음에 고집이 스며있듯이. 질긴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오래 끼려야" 하고, 고집스런 마음을 듣기 위해서는 "오래 들어야" 한다.
저 고기로 내일은 아주 멋진 스프를 내야겠다. 전날 밤 잠자리에서도 맘이 분주하다. 한 숟갈 떠먹는 순간 몸과 맘이 사르르 펴지는 맛. 조건을 건다. 첫째 깊어야 하고, 둘째, 맑아야 한다. 셋째, 건강이 느껴져야 한다. 그 스프로 만들 수 있는 여러 요리들에 대해서도 떠올려본다. 탕이 있고 수육이 있고 면이 있다.
아침 일곱시에 번득, 눈을 뜬다. 냉장고에 넣어둔 양지와 사태, 그리고 스지를 꺼내 큰 보울에 담고 물을 흘려 피를 빼기 시작한다. 물에 더 이상 붉은 색이 묻어나오지 않을 때까지, 서너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 사이 구석에 짱박아둔 곰솥을 꺼내 수세미로 깨끗이 닦아낸다. 대파는 뿌리까지 깨끗이 씻어내고 통으로 깐 양파 두개. 그리고 마늘을 두주먹쯤 쥔다. 캄보디아에서 온 통후추도 한줌 정도 필요하다. 후라이팬에 살짝 볶아내 맵고 화한 향을 더욱 복돋는다. 여기에 약간의 생강을 더한다. 반쪽 정도가 적당하다. 생강이 더해지지 않으면 뭐랄까. 특유의 시원함이 생기지 않는다.
핏물이 빠지길 기다리며, 동네 앞산을 산책한다. 할머니들이 뒷짐진 손에 신발을 쥔채, 맨발로 흙길을 밟고 있다. 저게 정말 건강에 도움이 되나 생각하며 멈칫. 나도 슬그머니 신발을 밟고 세네걸음쯤 내딛어본다. 음. 나쁘지 않은데. 그것두 잠시. 솔나무 잎이 따가웠던 내 발엔 금세 신발이 신겨져 있다. 그렇게 코스를 따라 두어시간 걷고 나면 겨드랑이와 인중에 땀이 맺혀나오는 게 느껴진다. 숲의 틈새로 떨어지는 가을햇살에서 고소한 들기름 냄새가 난다. 머리 위의 나뭇잎들이 깻잎튀김처럼 와그작, 거린다. 아. 배가 고픈 게 틀림없다. 이제 돌아가자.
솥 아래에 대파 두단을 무심하게 툭툭 꺾어 넣고 그 위에 양지와 사태, 그리고 스지를 얹는다. 준비한 재료를 고기 위에 와르르 쏟아넣고 고기가 푹 잠길만큼 물을 붓는다. 그걸 인덕션 위에 올려놓고 중불을 맞춘다.
기다리는 시간이다. 커피를 내리고, 4인용 식탁에 혼자 앉아 패드를 펼쳐놓고 예전에 써둔 글들을 퇴고할겸, 살핀다. 그러다가 아주 예전에 썼던 시 한 편에 눈이 간다.
비어가는 부엌
오래도록 간직한 물건에는 영혼이 깃든다 하는데
오래도록 간직한 사람이 떠나는 것은
아무래도 모를 일이다
간만에 내려온 고향에서 나는
어렸을 때 보았던 국자가
지금도 냄비 속에 담겨있는 것을 보았고
엄마가 죽으면 여기에
엄마의 영혼이 깃들까 물었다 처마 밑
오래 살던 제비가 떠났다고 슬퍼하던 엄마는
그치 저게 엄마를 닮았지, 하며 깔깔
웃어댔지만
국자란 늘 더운 국 속에 잠겨있다가
내 그릇으로 기울어지며 텅 비어버리는 것이다
그 생각에 마음에 안개가 피는 것이다
그렇지만 난 엄마가
엄마가 키우는 꽃 같은 것에 깃들었음 좋겠어
홀로 아름답다가 홀로 져버리는
그런 것이었으면 좋겠어, 그러자 엄마는 얘는 무슨, 하며
히히, 웃었지만
곰국이 깊이도 끓고 있는
솥을 휘저으며 뿌얘서 도무지 보이지 않는
저 솥 아래의 뼈들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는 것이었다
피식, 웃었다. 이런 시를 썼었지. 엄마가 내게서 사라진 이후를 생각하면서, 엄마 자신에게 존재한 적 없었던 엄마 자신의 삶을 떠올리다가 맘이 그렁그렁해져서 썼던 시다. 어린 날의 엄마는 내게 늘 강인하고 멋진 여자였지만, 어른이 된 내게 엄마는 점점 나약하고 상처많은 여자로 보였다. 불행한 결혼생활, 공장을 다니며 홀로 아들을 돌봐야했던 여자. 어느 신파드라마에 나올 법한 이야기의 주인공. 하지만 그 시절 모두의 이야기.
엄마와 함께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나갔던 날, 치밀었던 화가 있었다. 무엇을 물어봐도 싫다, 좋다가 없이. 너 하고픈 거 해. 하는 엄마에게 화가 나서 "엄마는 왜 좋아하는 게 없어!" 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엄마는 주눅들어 내게 말했다. "엄마는 뭘 해본 적이 없잖아."
그 말에 말문이 막혀서 침묵하다가, 자책하며 말했다. "미안해 엄마." 그러자 엄마가 대답했다.
"현아. 네가 엄마를 가르쳐줘."
나는 그 날 엄마에게 구글맵 보는 법을 알려줬다. 언젠가, 홀로 하는 등굣길이 걱정되어 나를 미행했던 엄마처럼. 한글과 시계 읽는 법을 알려줬던 그 옛날처럼. 나는 목적지를 찍고 내비게이션에 의지해 호텔로 돌아가는 엄마를 조용히 뒤따라갔다. 이게 있음 엄마 어디든 갈 수 있어. 어디든 찾아갈 수 있어. 여행을 떠나고 싶으면 늘 말해. 엄마는 아직 젊고 어디든 갈 수 있어. 내 엄마가 아니라, 문필주의 삶을 살아.
맛있는 냄새가 서서히 피어난다. 생각에 잠겨서 무언가를 끄적이다보니 세시간이 훌쩍 흘렀나보다. 뚜껑을 열어본다. 아직 스지는 좀 땐땐하다. 힘줄이니까 인정. 사태는 이제 쫄깃거려서 잘라 먹을 때가 왔다.
엄마가 작년 김장철에 담가 만든 김치와 함께 툭툭 싸서 먹는다. 저녁이면 자취하는 엄마가 매일마다 전화를 하는데, 오늘은 예쁜 아들인 척하며 전화를 받는다. 머하노. 하면. 밥 묵재. 하면서. 밥 잘 챙겨묵나, 하면 찰칵 찍어 보낸다.
걱정마라 엄마. 엄마 닮아스 요리 잘 해묵는다.
니가 한 기가?
어.
잘하네. 그람 됐다. 잘 챙기무라. 김치 떨어지믄 말하고.
엄마.
어.
우리집 와서 살믄 내가 맨날 해주재.
니 뒷바라지 하라고? 싫다. 내는 혼자 살란다.
피식, 웃는다. 그치. 나도 혼자 사는 게 편하지. 그니까 이제 내 걱정 말구, 엄마의 삶을 살라고. 엄마가 나를 여전히 물가에 내놓은 아들로 생각할까봐. 말뚝에 매인 염소처럼 내 주변을 서성이기만 할까봐 두려웠는데 다행이다 싶다. 그런 맘을 안고 심장을 녹이는 국물을 떠먹는데 까토까토 하고 메세지가 온다.
엄마 베트남 여행 갈건데 백만원 든단다.
약간의 후회와, 약간의 다행을 담아 답장한다.
ㅇ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