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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주 Oct 29. 2024

주방일지4

요리라는 풍경, 아무즈 부슈

후무스를 처음 먹은 건, 소설가 조해진 덕분이었다. "네가 나중에 차릴 것 같은 식당을 발견했어!" 그렇게 함께 간 식당에서 나는 후무스 샐러드를 처음 먹었다. 참외. 외국에서는 코리안 멜론이라 불리는 신토불이 과일을 곁들인 채였다. 해질녘의 구름처럼, 은은한 갈빛의 후무스 속으로 희고 단단한 참외과육을 푹 찍어 입에 넣는다. 참외의 달큰하고 시원한 과즙이 고소한 후무스와 뒤섞이면, 가벼운 비를 머금은 구름. 문득, 그 풍경으로 불어오는 맵고 알싸한 항기. 큐민. 여러 나라의 작물들이 피어나는 정원.



요리를 좋아하고 농사일을 좋아하던 이모의 텃밭에 가곤 했다. 이랑과 고랑은 흙 위로 그린 물의 파문, 그 가운데 이모는 호숫가에 던진 작은 돌멩이처럼 웅크려 있었다. 이모의 정원은 자그마한 연못 같구나. 금붕어 색깔의 파프리카, 복어처럼 부푼 호박, 돌돔처럼 검은 줄무늬가 선명한 수박. 봄과 여름, 가을, 겨울을 따라 매번 다른 과일과 채소, 허브, 꽃들이 열대어처럼 노는 곳. 챙이 큰 모자 그림자 안, 크고 깊은 슬픔 얼굴 사이로 가느다랗고 강인한 행복이 면면부절 비쳤다. 땅을 보고 감탄하는 내게 그녀가 말했다. "보기 좋재. 먹을라고 키우는 게 아이고 볼라고 키우는 기다."



정원이란 그런 것이다. 참외를 맺는 순간 찬란해졌다, 참외를 따는 순간 사라지는. 정원에선, 그래서 과일도, 나무도, 작대기 하나도 다 꽃으로 쓰인다. 물과 흙을 비효율적으로 쓰면서 그녀의 농장이 관상이 되는 게- 어떤 이에게는 비효율적인 사치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보기 위해 키운다"는 말 때문에, 내 마음은 한 계절 내도록 종처럼 울렸다. 관상. 그것은 품격을 지킨다는 것. 먹을 게 아니라 바라볼 게 필요하다는 것. 그런 맘.



남대문 시장에 가서 도기를 구경할 때면 내가 할 수 있는 요리들을 생각하게 된다. 어떤 그림을 그릴까. 한 때 사랑했던 사람이 집에 두고 간 접시를 꺼낸다. 남도 어딘가, 촬영을 나갔다 예뻐서 사왔다는 복고식 그릇세트다. 거칠거칠한 표면이 갓 뒤집은 흙의 표면을 떠올리게 한다. 투박한 것이 참 한국적이다.



하얗게 갈린 후무스를 푹 떠서 메밀꽃밭처럼 복슬복슬하게 펼쳐본다. 곁에 참외를 놓는다. 나는 여전히 과일을 잘 깎질 못해서 표면이 우둘투둘한 돌바닥 같다. 껍질을 뾰족하게 잘라서 귀를 쫑긋 세운 토끼모양으로 하고 싶었는데. 아직 누군가에게 선보일 요리는 아닌 모양이다. 곁에 바질을 둬서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을 표현하고 싶었건만 토끼들이 꼭 다친 모양이어서 어쩐지 서글프다. <오발탄>에 가깝다.



손님들을 집에 초대해 코스요리로 낸다면 아무즈 부슈로 내야지. 첫요리는 나의 첫문장, 첫커트, 그대들의 입맛을 생각하지만 그러면서도 포기할 수 없는 나의 철학. 내가 사는 집의 첫모습.



에피타이저에서 디저트로 끝나는 코스요리는 러시아에서 시작해 프랑스로 전파되며 꽃을 피운다. 에피타이저와 비슷한 전채요리를 프랑스에선 아무즈 부슈라고 부르는데, 한입크기로 만들어지는 요리들을 볼 때마다 나는 예술적인 감동같은 걸 받는다. 그 요리들을 사진으로 볼 때면 아름답다. 미술작품에 가깝다.



그리고 거기서 느껴지는 취향. 건축과 미술과 문학을 종합한듯이.



홀로 만든다. 어제 주문했던 재료들이 새벽배송으로 도착하여, 나는 나의 마음을 가만히 담아본다. 병아리콩, 올리브오일, 큐민을 넣어서 믹서에 가는 소리가 가득 퍼지고. 그 요란한 소리가 텅 빈 주방을 채움에 외로움을 덜면서. 그 곁에서, 언젠가 누군가 이곳에 온다면.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라보기 위해서, 바라보다가 그이에게 이 접시에 어떤 맘을 담았는지 들려줘야지 다짐하면서.



서른 중반에 닿고나서 그런 생각을 했다. 십년, 하면 하염없이 먼 시간 같지만. 열번의 여름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너무 짧게 느껴지는구나. 계절을 더 느끼고 하루라도 더 맛있게 먹자고.



삶을 시간으로 헤아리면 지리멸렬하지만, 계절로 헤아리면 빛난다는 것을. 나이테처럼 원 같은 반복을 겹겹 싸안으며.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던 수면 속으로 새가 발목을 넣고갈 때, 한 계절 출렁이는 순간. 그런, 특별한 순간으로 삶을 헤아리면. 삶은 결국 시간의 연속이 아니라 순간 모임임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슬픔에 머무르지 말고, 다시 또 희망을 기대하자고 다짐하면서.



후무스와 참외를 입안 가득 삼킨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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