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의 한계를 주변 사람이 정해줄까
대학교와 회사를 다니면서 지금까지도 이어가고 있는 인맥들이 있다. 어느새 관계의 길이가 10년이 다 되어간다. 다들 각자 사는 것이 바빠서 자주 보지는 못한다. 그래도 각종 결혼식과 행사에서 자주 보며 친목을 다지곤 한다. 어렸을 적부터 추억을 같이 만들었기에 그들과 같이 보내는 시간이 즐겁고 항상 반갑다.
어느 날 친하게 지내던 형이 결혼을 한다는 소식으로 여러 사람들을 한 자리에 모왔다. 대학 때부터 같이 지냈던 사람들과 오랜만에 보는 자리었다. 그리고 서로가 안부 인사를 하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좋은 일, 나쁜 일에 대해서 즐겁게 이야기를 하는 시간을 보냈다. 어느 때와 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문제는 모두가 기분 좋은 만남을 뒤로하고 친한 형과 같이 집에 가는 길에서 생겼다. 그 형은 회사 생활로 방황하는 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해주고 싶었다는 말이 있다고 했다. 그 말은 아래와 같다.
"야, 너 솔직히 아웃라이어는 아니야.
내가 너를 10년 동안 봤잖아, 그냥 평범하게 살아
그냥 우리는 정규분포에 있는 거야."
형의 말을 쉽게 해석하자면 최근 회사를 그만두고 싶고 하고 싶은 일에 도전을 하겠다는 나의 이야기를 듣고 해준 솔직한 조언이었다. 그는 술에 조금 취했고 솔직한 생각을 나에게 전달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냥 웃어버리고 그 상황을 넘겼다. 그렇게 나는 한계가 정해진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10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내 옆에서 나를 지켜본 사람이 해준 술 취한 조언이다. 나는 그 조언을 듣지 않기로 했다. 순간 기분 나쁘게 나의 한계를 그가 정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평범한 삶을 살아야만 하는 압박이 찾아왔다. 하지만 그가 말한 선입견으로 나의 삶을 제한하고 싶지 않다.
살다 보면 자신의 한계를 주변에서 정해줄 때가 온다. 오랫동안 옆에서 지켜봐 온 사람들의 말들로 나를 정의할 때가 온다. 본인이 선택하기보다 남이 정해준 선입견으로 내가 만들어지는 바보 같은 상황 말이다. 최악의 상황은 그런 선입견으로 선택을 강요받고 삶을 지속하는 경우이다.
결국 우리는 그들의 선입견에 작은 망치를 들고 깰 수 있어야 한다. 나의 한계를 남의 생각으로 정할 수는 없다. 그들은 나를 100%로 알지 못한다. 오롯이 나는 내가 제일 잘 안다. 아직 모를 수 있지만 결국 나만 나를 알 수 있는 삶이다. 그렇기에 남들이 정해주는 한계를 신경 쓰지 않아야 하고 본인 스스로가 선택해야 한다.
살다 보면 주변 사람들은 참 남의 이야기 좋아한다. 본인의 이야기보다 남의 이야기를 잘 설명한다. 그리고 상황을 다른 이에게 잘 전달하고 정확하게 정의 내리는 것을 좋아한다. '될놈될', '그럴 줄 알았어'와 같은 미사여구를 이용하며 그들은 그들의 정의대로 사회를 구현한다.
본인도 알지 못하는 삶의 방향을 남이 정해준 한계와 선입견으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 그 형의 조언으로 나는 오히려 더욱더 아웃라이어의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오기가 발동했고 의지가 불타올랐다. 아직 끝나지 않은 한계를 알려주고 선입견을 지우게 도와줄 것이다. 아울러 나중에 시간이 흘러 그에게 술 취하듯이 말해주고 싶다.
인생에 정규분포는 없어, 형. 다 특별한 삶이야.
사진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rnTq1cyKkx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