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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ik Aug 05. 2020

자발적 야근의 원인

불안, 기대 그리고 생존

오늘도 야근을 했다. 집에 와보니 밤 10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오늘 아침 출근할 때만 하더라도 칼퇴를 예상했다. 비도 오고 날씨도 꾸리꾸리 하기에 빠른 퇴근을 속으로 혼자 생각했다. 그렇게 아침 9시 업무를 시작했다. 어김없이 나를 찾는 전화와 모니터에 보이는 숫자, 문자들은 나를 반겨준다. 정신없이 일을 하다 보면 점심시간이 되고 잠깐의 휴식을 한 후 다시 오후 시간부터 일을 시작한다. 


타닥타닥,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귀에 들린다. 그런 와중에 왼쪽 귀에는 시소코 전화벨 소리가 들린다. 나에게 해결방법을 물어보는 영업점 문의 전화다. 전화벨에서 느껴지는 긴급함은 나를 더욱 조급하게 만든다. 그리고 전해지는 목소리로 긴급한 일과 여유 있는 일을 구분한다. 재빠르게 업무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전화를 받은 일부터 해결하고 다시 나의 일에 집중한다. 이 같은 문의 전화로 인해 업무시간(9시~6시)에는 집중해서 일을 처리하지 못할 때가 많다. 오늘도 나의 일은 다 끝내지 못하고 긴급하게 일어난 일만 해결하다가 오후 시간이 지났다. 자연스럽게 야근을 생각했고 저녁 7시가 돼서 다시 책상에 앉았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혼자의 일을 마치고 불을 끄는 시간, 오후 9시 30분이었다. 오늘도 야근으로 하루가 마무리된다.


사실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주 52시간이 생긴 이후에는 무조건 저녁 6시 칼퇴 었다. 업무 시간에 집중해서 일을 했고 다른 직원들의 눈치를 보지 않으며 바로 퇴근을 실행하는 프로 칼퇴러였다. 꼰대 같은 상사와 남을 비난하기 좋아하는 직장인들 사이에서 눈치를 보지 않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나는 프로이기에 그 어려운 칼퇴를 보여주었다.


이런 프로 칼퇴러였던 내가 자발적 야근을 하게 된 원인에는 크게 3가지가 있다.

1. 불안

같이 근무하던 차장님이 다른 팀으로 가셨다. 준비 없이 한 업무의 책임자가 되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기에 상황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직급 대리로서 책임자의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다. 책임자가 되고 나니 지금껏 보지 못했던 상황들이 찾아왔다. 작은 의사결정부터 긴급한 회의까지 하나 같이 나의 입에서 결정되는 것들이 많아졌다. 그때부터 나는 불안하기 시작했다. 맡은 업무에 대한 책임감이 불안감으로 변했다. 그렇게 업무 운영에 대한 불안이 나를 야근러로 만들었다.


2. 기대

사실 이른 때에 책임자가 되어 팀장과 부장님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상황이 만들어준 업무 책임자였지만 그만큼 실력과 경험이 없었다면 책임자를 부여받지도 못했을 것이다. 또한, 곧 과장 진급을 앞두고 있었고 평가를 하는 윗사람들의 기대가 높았던 시점이었다.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책임을 맡은 만큼 성과를 보여준다면 진급에 대한 기대도 노려볼 수 있었다. 그것이 나를 야근러로 만든 2번째 이유다.


3. 생존

내가 회사를 다니는 이유와 같다. 지금 먹고 있는 밥과 간식 그리고 주말에 먹을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서나는 야근을 한다. 그리고 앞으로 밝은 미래를 위해서 돈을 번다. 솔직한 이유이며 계속 일을 지속하게 만드는 원인이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야근을 포함해 회사에서 일을 하는 것이다. 일을 하면 급여를 받는다. 급여를 받으면 나는 오늘과 내일도 생존할 수 있다. 그래서 오늘도 야근을 할 수 있었다.



직장인들에게 칼퇴는 어쩌면 당연한 권리이다. 출근 시간에 늦게 오는 걸 체크하고 퇴근 시간에 빨리 가는 걸 체크하는 문화를 보면 참 안타깝다. 예전보다 야근을 하면 일을 잘하는 사람, 칼퇴하면 싹수없는 놈, 의리 없는 놈과 같은 인식은 많이 없어졌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직장인들이 다양한 이유로 야근을 한다. 나와 같이 불안, 기대 그리고 생존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단순히 일이 좋아서 야근을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각자 저마다 일을 하는 이유가 참 궁금하다. 다들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이유로 야근을 하고 있는지 듣고 싶은 밤이다. 


지금은 자발적 야근러가 되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난 항상 칼퇴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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