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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태웅 Dec 26. 2019

빠트린 근대의 계단

반성없는 식민지 모방 수입의, 열등의 “ですのである”

1. “ですのである”
이십육칠 년 전쯤의 얘기다. 법제처에 다니던 외삼촌이 물었다. “너 ‘것인 것이다’와 ‘것이다’가 뭐가 다른지 아냐?” “글쎄, 같은 말 아닌가요?” 답답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그가 말을 이었다. “이걸 굳이 ‘것인 것이다’로 써달라고 하는구나.” 어느 부처에선가 법령 개정안을 가지고 왔는데, 거의 대부분의 문장이 ‘것인 것이다’로 끝나, 고치려고 했더니 사뭇 난감한 표정을 짓더라는 것이다. 알고 보니 일본의 관련법을 거진 그대로 베낀 것인데, 그 일본어 법령의 마지막 문구들이 대개 ‘ですのである’ 우리말로 직역하면 ‘것인 것이다’였다. 아마도 그 담당자는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베낀 원전의 문장을 함부로 고칠 자신이 없었거나, 다른 법령들이 모두들 ‘것인 것이다’를 고수하고 있는데 혼자서만 ‘것이다’로 치고 나갈 담력이 없었을 것이다.


2. 口蹄疫
구제역(口蹄疫). 어렵기 짝이 없는 이 병의 영어 이름은 foot-and-mouth disease, 그저 ‘발과 입병’이다. 한글사전에는 ‘소 양 돼지 등 거의 모든 우제류(偶蹄類)에 생긴다’라고 돼 있다. 우제류? ‘유제류(有蹄類) 가운데 발굽이 짝수인 동물’이다. 유제류? ‘일반적으로 발굽이 있는 모든 포유동물’이다. 그러니까 ‘짝수발굽동물의 입과 발에 생기는 병’이 구제역이다.


3. 折柳와 倚門望
고등학교때 “멧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님의 손대…”로 시작하는 홍랑의 시조를 배웠다. 하필 찔레도, 국화도 아니고 멧버들? 그때는 ‘버드나무가 꺽꽂이를 하면 잘 사니, 심어두고 잊지말라고 준다’고 들었다. 아주 나중에, 중국 당나라에서 벗과 헤어질 때 버들가지를 꺾어 이별의 정표로 주는 풍습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절류 (折柳)라고 하면 곧 이별을 뜻했다. 홍랑은, 요즘으로 치면 청담동의 젊은 친구들이 뉴요커의 쿨한 풍습을 따라하듯 한 셈이다. 당나라에서는 왜 그랬을까? 柳의 중국 발음은 머무른다는 뜻의 ‘留’와 같다. 가지 말고 머물러 달라는 이중의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그저 꺽꽂이만 알아서는…


조선 중기 시인 권필이 중국 사신을 맞으러 의주에 갔다가 겨울 몇 달을 머물 때 형 권겹이 그 멀리까지 찾아왔다. 권필이 읊었다. “서울서 손나누고 헤어진 뒤로 오래도록 소식도 아득했었네. 서로를 그리기 몇 달이던가, 더욱이 낯선 땅서 이리 만났네. 눈속에도 봄빛은 피어나거니 하늘가도 고향인양 포근하구나. 인하여 문 기대어 바라보자니(仍懷倚門望) 기쁨은 스러지고 구슬퍼지네.” 문에 기대자 느닷없이 기쁨이 사라진 이 사태를 두고, 국어선생님의 해석은 난처하게 겉돌았다. ‘倚門望’ 역시 고사가 있는 말이다. 중국 전국시대 제나라 왕손가가 요치의 난중에 왕의 소재를 잃고 집에 돌아오니 그 어머니가 꾸짖었다. “네가 아침에 나가 저녁에 오면 나는 대문에 기대어 기다렸고, 돌아오지 않으면 나는 마을문에 기대 기다렸다. 지금 임금을 섬기다가 임금이 도망가셨는데 그곳을 알지 못하니 어찌 돌아왔느냐.” 그뒤 ‘문에 기대’는 그리운 어머니를 표현하는 관용구가 됐다. 따라서 이 대목은 “문득 문에 기대 기다리실 어머니를 생각하니”라고 해석을 해야 옳다. 우리 또래는 모두 ‘문 기대어 바라보자니’로 배웠다. 이런, 이런.


일제 강점과 한국전쟁이 근대기를 심하게 비틀거나 대부분 앗아가 버린 뒤, 한국은 오직 성장만을 위해 치달려 왔고, 이제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 됐다. 그 결과 21세기초의 한국은 마치 모래 위에 꽂은 젓가락처럼 빈약하다.

부가 일정 수준이상에 이르면 소득보다는 자산이 더 중요해진다. 건물을 일정 높이 이상으로 올리자면 바닥을 넓고 깊게 파야 한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일정 수준이상이 되면 국민소득보다는 국부가 더 중요하고, 젓가락같은 외통으로는 더 성장할 방법이 없다.

한국의 미래는 이런 근대화의 잃어버린 계단을 채워나가는데 있을지도 모른다. 개념들에, 법령들에, 제도들에 그리고 우리들의 머릿속에, 반성없는 식민지 모방 수입의, 열등의 “ですのである”가 여전히 가득하고, 우리의 뿌리는 우리한테 가장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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