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동기와 입사 후 포부를 작성하시오. (500자 이내)
~Previously On 슬기로운 판교생활~
9년 차 직장인인 저자는 조직개편으로 뒤숭숭한 어느 날 출근길 신분당선에서
정년까지 조직생활을 한다는 가정 하에 벌써 직장생활이 3분의 1을 날려 보냈다는 사실에 뒤집어지게 놀라고 마는데…!
Ep1. 절대 회사원은 되기 싫어
장래희망이 회사원인 자라나는 새싹이 어디 있을까?
그런 사람 본 적 있으신 분?
나 역시 회사원이라는 건 내가 꿈으로 삼기엔 너무 시시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린 나이에도 IMF란 뭔가 심각한 일이 발생했구나 싶은 것이었고 그 과정에서 직장인은 하면 안 되겠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잘리지 않는 철밥통이 최고다.라는 어머니의 세뇌로 어린이집과 초등학교, 중학교를 거쳐 마침내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까지도
나의 장래희망에 ‘회사원’이 랭크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주변 친척과 친구들의 부모님들 모두 전문직 아니면 공무원 아니면 자영업이었기 때문에
내가 직간접적으로 알고 있었던 직업의 세계가 한없이 얕았고
원래 뭘 모르는 사람은 내가 뭘 모르는지조차 모르는 것이기에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직업의 세계가 그렇게 접시 물 수준으로 얕은 줄도 몰랐었다.
때문에 계속 피아니스트, 선생님 이런 꿈들을 적어내다가
고등학교에 진학하고서는 나름의 구체적인 꿈으로 ‘국어’ 선생님을 적어낸 게 그나마 큰 발전이었다.
고만고만한 수능 성적에 맞춰서 가/나/다군의 국어국문학과와 국어교육학과에 지원했고 모두 합격했지만
학교 이름이 제일 나은 곳에 지원한 곳은 국어국문학과였다.
순진한 고3은 국문과에서 국교 복전을 따는 건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하였고..
대학교 1학년 성적은…
아무튼 복전에서도 떨어졌지만
좌절하지 않고 국교 대학원 가지 뭐 ㅎㅎ 하는 꽃내음 넘치는 생각을 가지고 전공 수업을 열심히 들었다.
하지만 대학교 3학년… 국어 입시학원과 영어 학원 자기소개서 과외 등을 하면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 나와 맞지 않다.. 는 것을 깨달아버렸고
그럼 뭐 하지? 상태에 이르렀다.
엄청난 열의를 가지고 바랐던 것은 아니었지만 선생님만 생각하며 공교육 기간을 보냈는데
갑자기 목표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후 이런저런 고민과 방황의 세월을 거쳐
믿고 따랐던 교수님의 추천으로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다.
회사를 다니는 것보다는 연구하고 강의하는 게 나와 맞을 거야 그럴 거야.. 중고등학생을 가르쳐서 힘들었던 거지 대학생 가르치는 건 괜찮을 거야 라는 생각도 있었고
여전히 회사에서 어떤 일들을 하는 건지 잘 몰랐고 잘 모르기 때문에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대학원에서 연구도 해보고 프로젝트에 참여해 볼 수 있는 기회도 가져볼 수 있었는데
직접 경험해 보니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바쁘게 결과물을 내고 문서를 작성하는 게 (원하는 퀄리티로 뽑아내는 과정이) 괴롭기는 했지만 재밌고 보람 있었다.
여전히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는 건지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대학원에서 진행한 제안서 정도의 프로젝트 말고
진짜 회사에 들어가서 내가 생각한 결과물이 실현되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원에서 진행한 프로젝트들은 대부분 선행 연구나 제안서에 성격의 컨설팅에 가까운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자연히 기획자라는 직무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직무의 세계는 아리송하기만 해서 지원하는 회사에서 기획 직무에 대한 설명을 읽고 또 읽어도 도대체 어떤 일을 한다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감이 잡히지 않는 일에 대한 지원동기와 입사 후 포부를 쓰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있을까?
신입이어서 그런지 얼레벌레 쓴 이력서와 자소서는 꽤 서류 합격률이 좋았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나름 읽는 사람을 고려해서 구조화해서 쓰려고 노력하고
지원하는 회사마다 미션과 비전 인재상들을 꼼꼼히 읽고 그에 끼워 맞춰서 지원동기와 입사 후 포부들을 써냈던 게 유효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도 그 정도 눈치코치만으로는 인적성과 1차 면접까지만 유효했던 거였는지
초년생 때의 나는 정말이지 합격운이 없었다.
운이라고 할 수 있나? 경쟁자들보다 경쟁력이 많이 뒤떨어졌을 수밖에 없었다. 어떤 회사나 직무에 대한 열의를 게 없었으니까.
하지만 첫 회사를 어거지로 들어가고
조직 내에서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어떤 일이 나에게 맞는 건지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가 점차 분명해졌다.
별로 꿀팁이랄 게 없는 구구절절 개인사를 길게 쓴 이유는…
결국에는 자신만의 속도로 자신의 일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적어두고 싶어서이다.
생성형 AI도 대중화된 시대에 조금만 찾아보면 취업 꿀팁과 정보들이 넘치는 사회여서 그런지
우리 모두 ‘속도’에 점점 더 예민해진 것 같다.
대학생활 잘 뽑아 먹는 법, 대학 때 꼭 해야 하는 경험, 사회 초년생이 꼭 알아야 하는 것들 등등
뭐든 효율적으로 최적의 투자로 최고의 효용을 원하는 사회에서는 조금만 뒤쳐져도 나 홀로 세상을 등지고 있는 듯한 외로움이 엄습한다.
나도 그랬는데 요즘 대학생들, 주니어들은 그런 압박이 더 한 것 같다.
절대 빠릿빠릿하거나 효율적인 인재와는 거리가 먼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간 찾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분명 어떤 경험들이 필요한 거고 그 경험은 개인마다 모두 다른 것이어서 본인이 직접 찾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도.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내게 주어진 상황 내에서 조금씩 찾아나가도 괜찮다. 언젠가는 찾게 된다.
나도 지금처럼 내가 하는 일을 사랑하고 만족하면서 조직생활을 해나가게 될지는 몰랐다.
어쩌면 ‘절대’라는 말은 인생에서 ‘절대’ 없는 걸지도 모른다.
어떤 때에는 절대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것도
그 시간의 터널을 지나오면 아무 일이 아니게 되는 것처럼
절대 회사원은 되기 싫었지만 지금은 절대로! 조직에서 오래 일하고 싶게 된 것처럼
또 어떤 시간의 터널이 지나가면 절대! 나만의 일을 하고 싶어지게 될 수도 있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