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 폐급 신입의 등장

Q. 폐급이랑 일하기 힘든가요?

by 헤더헤더

~Previously On 슬기로운 판교생활~

절대! 회사원은 되기 싫었던 대학원생은

억지로 조직 생활에 핫데뷰하게 되는데..

내가 생각했던 회사생활.. 이게 맞아?



Ep2. 폐급 신입의 등장


폐급

“폐급“은 주로 군대에서 사용되는 용어로, 업무 수행 능력이 현저히 낮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을 지칭합니다.


지식iN

Q. 폐급이랑 일하기 힘든가요?

A. 폐급이 있을 순 있는데 그 폐급을 방치하면서 운영하는 회사는 미래가 없습니다.


Q. 폐급이 뭐에여?

회사에 폐급이 많드는데 무슨 뜻이죠?

A. 폐급이라는 건 보통 실력이나 능력이 부족한 사람을 의미해용! 그래서 회사에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건…


Q. 신입이 폐급인데요. 해결책 좀..

A. 해결책이랄 게 딱히 없고요. 응원합니다.



폐급이라는 말은 군대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언제 이게 사회로 나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르바이트나 직장에서 같이 일하기 힘든 직원을 가리켜 폐급이라고 지칭하는 것을 여러 번 본 적 있다.


폐급의 ‘폐’는 폐기물이 연상되는데 그 표현의 폭력성을 떠나서 인터넷에 떠도는 기상천외한 폐급들의 행태를 고발하는 글들을 우연히 접하면

나 신입 때는 어땠더라..? 하는 생각과 함께 모골이 송연해지곤 한다.



나는 정말 실수가 많은 신입이었다.

OTT 플랫폼이 막 국내에 도입되던 때에 첫 커리어 시작을 국내 OTT 업체에서 시작했다.

나는 운영 부서에서 모바일 부문의 한 파트를 담당했는데 왜 그렇게 실수가 잦았던지 나조차도 이해가 불가할 정도였다.

서비스 기획을 하고 있는 지금도 종종 운영 업무를 하게 될 때가 있는데 훨씬 더 많은 사용자에게 노출되고 더 복잡한 세팅이 필요한 항목이어도 운영 실수로 잘 못 지급된 일이 없는데 신입이었던 나는 참 실수가 많았다.


입사한 지 2주가 채 안되던 시점에 가격 할인 이벤트 공지를 잘 못 노출하는 큰 실수를 했다.

오래전 일이지만 CS 인입으로 오류를 인지하고 그다음에는 사수였던 선배와 대리님, 과장님이 내 실수를 커버해 주는 과정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적막한 사무실에 퍼져있는 싸한 분위기는 신입이었던 그때는 정말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첫 회사는 계약직이어서 그랬던 건지 내가 예쁨 받기 어려운 폐급 신입이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참 사람들과 잘 지내기가 어려웠다.

그 회사는 그저 졸업 전에 스쳐 지나갈 회사라고 생각한 내 태도가 제일 큰 문제였을 것이다.

누군가는 진지하게 다니고 있을 생업의 공간에서 그런 태도를 가진 사람이 들어오면 얼마나 어울려주기 싫겠는가.

신입 때는 순진하게도 아무도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지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신입이 아닌 연차가 되고 보니 정말로.. 정말로..! 그런 생각은 훤히 들여다 보이는 것이다.

마음속 생각은 스쳐 지나가는 언행과 태도에서 묻어날 수밖에 없어서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숨기기가 어렵고

옆에 있는 사람은 그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모르기가 어렵다.


가뜩이나 회사 사람들과 지내기가 쉽지 않은데

실수가 잦으니 일이란 게 점점 무서워졌고 도무지 재미있지가 않았다.

그나마 마음의 안식이었던 업무는 한 달에 한 번씩 작성하는 경쟁사 동향 보고였다.

혼자서 경쟁사 앱들을 살펴보고 새로 도입된 기능은 없는지 진행하고 있는 이벤트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보도자료는 어떻게 배포되었는지 등을 확인하고 정리하면서

문서를 확인하는 사람이 얼마나 빠르게 내용을 파악하고 보고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과정이 재밌었다.

아마 내가 작성한 문서는 과장님이 1차로 확인하신 후 본사 차장님이 월 단위 정례 보고용으로 사용하셨던 것 같다.

어느 날 과장님이 메신저 캡처하신 것을 보내주셨는데 차장님이 이번 달 정리를 너무 잘해주었다며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폐급 신입으로 조직 생활을 시작한 이후 처음 들어본 칭찬이었다.

회사 다니는 게 나만 이렇게 어렵나? 싶은 생각이 많이 들던 신입 시절에 단비 같은 칭찬이었고 그때의 나에게 꼭 필요한 응원이었다.

뛸 듯이 기쁘단 말이 뭔지 알 것 같은 기분이었고 과장님이 보내주신 메시지를 캡처해서 사진앱에 저장했던 기억이 난다. (N드라이브에 아직 남아있을 줄 알았는데 없네요. ㅠㅠ)

지금 생각하면 있는 내용을 그대로 취합해서 정리하면 되는 난이도가 낮은 문서 업무고 신입이 정리를 잘해가면 얼마나 잘했겠냐마는.

그걸 여상히 지나치지 않고 콕 집어 칭찬해 주신 차장님께도, 그 메시지를 나에게 캡처까지 해서 전달해 주신 과장님께도 지금까지도 참 감사하다.


그저 대학원 졸업 논문이 통과되기 전까지 생활비를 벌충할 마음으로 시작했던 직장생활이

미디어에서 그려낸 직장인에 대한 이미지밖에 없었던 나에게

나는 어떤 일을 잘할 수 있을까 앞으로 어떤 회사, 어떤 직무를 선택해야 즐겁게 오래 일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첫 단추가 시작된 전환점이 된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일에 대한 생각이 막 영글기 시작한 때라 대학원 졸업 이후 이직 시점이 되었을 때 단순히 ‘보고서’ 쓰는 것을 주 업무로 하는 곳을 후보처로 찾아보았고 여러 회사들에 지원한 끝에 모바일 리서치 회사로 이직하게 되었다.

두 번째 회사에서 깨달았던 지점은 다음 글에서 자세히 써 보려 한다.


그 이후로도 많은 시행착오와 이직을 거쳤고 지금은 내가 원하는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신입 연차를 벗어나면서 나에게도 나보다 저연차의 부사수 혹은 후배들이 여럿 생겼다.

후배들과 함께 협업을 할 기회가 주어질 때에 항상 신입 때의 나를 생각한다.

조금만 덜 무섭게 얘기해 주지.. 화내지 말고 얘기해 주면 더 잘 알아들을 수 있는데..라고 생각했던 절박하고 간절했던 내 신입시절을 떠올린다.

하루 종일 초긴장 상태에 있다가 드디어 자취방 문을 열고 들어가서 무슨 맛인지도 모를 저녁을 먹으며 펑펑 울던 0년 차 시절을 떠올린다.

그래서 같은 것을 몇 번을 물어도 늘 성심성의껏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기 위해 노력한다. (내가 만난 후배들 대부분은 나보다 더 일잘러여서 답답할 일이 없긴 하다.)

얼마 전에 같은 파트였던 후배 기획자가 입사한 지 얼마 안돼서 첫 업무를 진행했을 때 본인이 여러 번 질문을 했는데도 짜증 한 번 안 내고 잘 알려주셔서 고마웠다는 말을 했다.

정작 나는 기억이 안 났지만 신입시절 내가 간절히 바랐던 선배가 된 것 같아서 홀로 감회가 새로웠다.


영원히 서툰 신입은 없다.

나랑 잘 안 맞는 일은 있어도 영원히 내 손에 안 익을 일은 없다.

당장은 재미없더라도 하다 보니 일의 재미를 찾기도 하고

나와 정말 잘 맞는 일을 스스로 찾아 나서게 되는 때가 오기도 한다.

지금은 존버해야 하는 때일 수도 잠깐 쉬어야 할 때일 수도 있다.


그런 다양한 길 위에 있는 사람들이 만난 직장에서

서로 좀 더 다정하고 유연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마쳐 본다.



어제 발행했어야 했는데 지금 발행한 폐급 브런치 신입 작가입니다.. (폐급 워딩 근절 운동하고 싶은데 자꾸 써서 죄송합니다.)

다음 글부터는 착실하게 매주 월요일 발행하겠읍니다..

업무 참고 부탁드립니다.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02화Ep1. 절대 회사원은 되기 싫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