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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용 Dec 19. 2023

불안의 밤에 고하는 말 _ 메트 헤이그

넷플릭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보면서, 정신이 아프다는 것도 꽤 평범한 질병 같다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면 몸의 기능이 약해지고 이곳저곳 아픈 것처럼 마음도 그렇게 고장이 나는 것이다. 드라마 속 다양한 정신질환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가질 수 있는 질병 같았다. 

이 책도 비슷한 맥락의 호기심으로 읽었다. 오랫동안 정신질환을 겪어온 저자는 자신이 왜 아프고 어떻게 아픈지 이를 개선하기 위해 무엇을 했고 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특히 왜 아픈가에 대한 이유에 공감이 갔는데, 다양한 이유들이 결국은 '과잉'의 문제였다. 너무 많은 정보를 접하고, 너무 많은 일을 해야 하고, 너무 많은 것을 만들어내고, 너무 많은 것을 소비하고, 너무 많은 성공을 바라는.. 모든 게 너무 많은 세상이 되었다. 가끔은 무언가를 알고 하는 것보다 모르고 안 하는 게 특권이 아닐까 싶다. 하고 싶은 것을 한다기보다 안 해도 되는 것은 안 할 수 있는 것. 나는 그런 것을 원하는 것 같다.


-

발췌


16

한 번씩 이런 의구심이 든다. 과거에 사람들을 괴롭혔던 결핍의 문제들은 오늘날 과잉의 문제로 대체되어버린 게 아닐까. 그 때문인지 요즘은 너 나 할 것 없이 무언가를 떼어버리는 방법으로 라이프 스타일을 바꿔보려고 한다. 


26

미니멀리즘 신봉자인 사사키 후미로의 표현에 따르면 '덜 소유하는 데에 행복이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처음 발작이 찾아왔던 초기에 내가 치워버린 건 술, 담배, 독한 커피 정도뿐이었지만, 그 후로 몇 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런 것들보다 좀 더 '전반적인 과잉'이 진짜 문제라는 걸 안다. 


32

나는 이 책에서 우리의 '감정'도 우리의 '소유물'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규명하고 싶다. 정신 건강이 신체 건강 못지않게 중요하며, 그런 점에서 지금 세상은 단단히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점을 밝혀내고 싶다. 


57

말하기는, 내면의 고통을 밖으로 표출하는 과정과 다른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과정을 통해 화자와 청자 모두를 치유한다. 

말하는 것을 멈추지 마라.

혹시라도 당신에게 정신 건강 문제가 있다면,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에 휘둘려 그런 문제를 당신 자신의 내면적 결함 또는 나약함으로 여겨선 절대 안 된다. 


84

마음의 병을 앓으면서 내가 배운 한가지 교훈은, '회복'이 '받아들임'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일단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변화를 시도해볼 수 있다. 


87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의 말대로, 불안은 어쩌면 '자유의 결과로 생긴 현기증'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선택의 자유'는 진정 기적이다.

그런데 선택은 무한한 반면 우리 인생은 그 시간의 범위가 제한적이다. 우리는 인생을 다 살아볼 수 없다. 모든 영화를 볼 수도, 세상의 모든 책을 읽을 수도, 이 사랑스러운 지구상의 모든 장소를 다 가볼 수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상황에 굴복하기보다는 우리 앞에 놓인 선택지를 개조해야 한다.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선택을 골라내고 나머지는 버려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또 다른 세상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그 모든 것이 전부 내게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만 버리면, 우리에게 진짜로 필요한 모든 것은 바로 여기, 이 세상에 있다.


92

미국 사회학자 세리 터클의 말을 인용하자면 "기술에 대한 기대는 점점 커지고, 같은 인간에 대한 기대는 점점 줄어드는" 공간이며, 자신의 존재 증명을 위해 남들에게 자신을 공유해야 하는 그런 세상이다. 물론 이런 변화에 좋은 측면도 있었다.


95

소비지상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가 이미 갖고 있는 현재의 것이 아니라 그다음의 것을 원하는 심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것은 실패할 확률이 거의 없는 불행 레시피인 셈이다. 


101

우리는 불행을 영업당하고 있다. 왜냐, 불행이야말로 돈이 몰리는 곳이니까. 

현대인들에게 가장 장사가 잘되는 것들의 핵심은 결국 '다른 무언가가 되려고 노력하면 지금보다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103

사람들 모두가 자신이 그렇게 괜찮은 수준은 아니라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세계 거의 모든 곳에서 비즈니스 업계가 이용해먹으려는 핵심이다. 


115

사람들이 자기 외모나 신체에 만족하면, 그들은 자기 몸을 타도해야 할 적이나 심하게는 '물건'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줄어들고 오히려 자기 관리에 더 노력을 기울이게 됩니다. 


129

그 사람이 걸린 '병'을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 것은 쉽다. 하지만 그 병이 유발하는 '행동'을 기준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지 않기란 훨씬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눈에는 그 이유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159

쇼핑센터에서 걸었던 사람 중 44퍼센트는 그곳에서 자존감이 낮아지는 것 같았다고 대답했다. 반면 숲속을 걸었던 90퍼센트의 사람은 자존감이 높아지는 걸 느꼈다고 대답했다.


178

확신하건대, 스마트폰을 한 번이라도 써봤거나 트위터나 인스타에 가입한 적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피프스가 보여준 것과 같은 강박적 행동에 공감할 것이다.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한 번 더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확인하고, 그리고 그냥 한 번 더 보기만 하고.. 무언가를 '확인할 수 있는 능력'이 무언가를 '하지 않고 못 배기는 강박'으로 바뀌고 나면, 우리는 자꾸만 그 옛날, 애초에 그런 '능력'이 아예 존재하지도 필요하지도 않았던 그 시절을 애타게 그리워하게 되는 것 같다.


183

우리는 하루가 24시간보다 길면 좋겠다는 타령을 자주 늘어놓지만, 실제로 그렇게 된다 해도 별 소용은 없을 것이다. 딱 봐도 문제는 시간 부족이 아니다. 우리가 가진 것 중 시간을 제외한 모든 것이 과잉이기 때문이다. 


239

앞으로 우리는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무조건 미워하게 될지도 모른다. 정치인들은 상대편에 손을 내밀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될 수 있다. '다름'은 찬양의 대상이 아니라 두려움과 조롱의 대상이 된다. 비슷한 관점을 가진 사람들조차 아주 미미한 의견 차이도 서로 용납하지 못하여 결국 흩어지게 되고, 사람들은 한가지 관점만 존재하는 아주 작은 세계에 갇혀버린다. 그리고 그 안에서 똑같은 내용에 대한 백만 가지 버전의 책을 읽고, 똑같은 노래를 듣고, 자신들의 의견만 서로 리트윗하며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이 세상 끝나는 날까지.


261

나에게는 독서가 비사교적 활동이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지극히 사회적인 활동이었다. 내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진정성 있는 어울림이었고, 나는 다른 사람들의 상상에 깊이 연결되었다고 느꼈다. 사회가 흔히 요구하는 수많은 여과막 없이 다른 이들과 이어질 수 있는 방법이었다. 


301

"아무튼, 네가 진심으로 알고 싶다면 내가 해주고 싶은 충고는, 그만 좀 하라는 거야."(바다거북)

"뭘 그만하라는 거야?"

"무의미한 일들 꽁무늬만 정신없이 쫒아다니는 거. 인간들은 왜 그렇게 자기가 있는 곳에서 한시라도 못 벗어나서 안달인지 모르겠어. 왜 그런거야? 공기 때문이야? 공기가 너희를 충분히 잘 지탱해주지 못하는 거야? 어쩌면 너희들은 바다에서 좀 더 있어봐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충고할게, 그냥 그만해.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한다는 생각조차 버려. 그냥 시간을 네 것으로 만들어. 빠르게도 가보고, 천천히 움직여보기도 하는 거야. 네가 어딜 가든 언제나 너 자신을 잃지 않을 거라는 것만 알고 있으면 돼. 인생이라는 물속에서 기분 좋게 물장구를 쳐봐."(바다거북)


333

느껴지지 않을 감정을 애써 느끼려 하지 말자. 내가 되지 못할 누군가 또는 무언가가 되려고 애쓰지 말자. 그렇게 안간힘을 쓰다가는 결국 지쳐 쓰러지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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