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때우고 싶을 때 넷플릭스로 좀비 영화를 보곤 한다. 뻔한 스토리에 적당한 긴장감, 크게 머리 쓰지 않고 시간 보내기에 좋다. 얼마 전에도 그런 목적으로 이름 모를 좀비영화를 봤다. 크게 기억할 건 없지만 한가지 기억나는 것이 있어 기록을 남긴다.
창문을 내린 채 멈춰있는 자동차에 주인공들이 타고 있다. 주위에 좀비가 있나 없나 숨죽여 긴장하고 있는 바로 그때 창문으로 괴성을 지르며 좀비 흉내를 내는 퇴역군인? 예비역? 같은 사내가 등장해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자지러지게 웃는다. 원래 알던 이웃인 것 같은데 어디 멀리서 왔는지 사람들이 좀비가 된 사실도 모른 채 누가 이상하다는 소리만 한 채 홀연히 제 갈 길 가는 사내. 이 영화는 분명 좀비를 소재로 한 코미디물은 아니었는데.. 뭐지.. 이 사내는 한 번 더 같은 모습으로 등장해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자지러지게 웃어 재끼려 하지만 정색하는 사람들에게 무안해하며 급하게 자리를 뜬다. 이런 장난꾸러기가 어떻게 계속 살아남아서 사람들에게 장난을 치는 걸까 싶다. 이건 분명 코미디 물이 아닌데.. 그러다 극의 거의 마직막에서 이 사내는 한 번 더 등장한다. 이번엔 넓은 평야를 잔뜩 긴장하며 걸어가는 주인공 무리 앞, 쌓여있는 짚더미? 뒤에서 갑자기 튀어 오른다. 괴성을 지르는 것은 똑같으나 이번엔 옴 몸을 뻗으며 점프도 한다. 뭔가 '와!' 하는 모양새였을까. 어떤 모양새였는지 보이는 것도 잠시 막 총을 잡아본 어떤 인물이 순간적으로 샷건을 쏜다. 웃으라는 건가.. 당황? 죄책감? 같은 감정에 휩싸인 인물에게 주인공은 어차피 물렸다고, 괜찮다고 신경 쓰지 말라고 위로한다.
정말? 좀비를 만났고 물렸는데 그런 장난을 칠 수 있다고? 선의의 거짓말인가? 아님 진짜인가? 그런데도 장난을 치고 싶었던 걸까? 예전에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묻는다면 내 답은 기분좋음 이다. 위기 앞에서 상황 파악 못 하고 미친 거 아닌가 싶을 정도의 좋은 기분을 유지하는 것이다" 투자에 대한 영화는 아니었지만, 이 글이 생각났다.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왔는데 보이는 사람마다 나를 물려고 하고 정신 나간 모습을 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 정상인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놀려줄까 고민하다 확 놀려주는 재미를 즐기다니. 세상이 멸망하는 위기는 잘 모르겠고 나는 지금 이 장난이 제일 중요해, 라는 느낌일까. 이게 뭐라고, 참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위기의 순간에 이런 장난을 칠 수 있을까? 웃어 재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