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빛나 지음
'빛나는 농사'는 '곽빛나' 농부의 2018 상반기 농사일기를 엮은 책이다. 농사에 대한 관심보단 '곽빛나'라는 사람의 생각이나 글이 궁금해 책을 읽었다. 녹색당을 통해 알게 된 '곽빛나'를 어떤 사람이라고 정의하기엔 그와의 만남이 그리 잦거나 길지 않았다. 다만 내가 보기에 그는 생각한 것이 그대로 삶이 되는 사람이었고, 녹색당을 하면서 만나는 '이런 사람이 정치하면 좋겠다' 싶은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책은 농사일기답게 '농사'에 대한 이야기가 많지만, 중간중간 '농사'를 대하는 그의 태도도 볼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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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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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혼자 농사짓는다는 말을 하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여자 혼자 농사를 어떻게 짓냐"는 말이다. 사실 농사일 대부분은 여성이 하는데 이상하게 세상은 여자 혼자라는 말을 많이 한다. 기계도 좋아지고 힘들이는 일은 대부분 돈 주면 다 해주는 세상에 여자 혼자 농사짓는 게 무어가 힘들단 말인가. 실제로 농촌에는 여자 혼자 하는 일이 더 많은데 여성 농촌인구보다 실제로 여성 농부로 등록된 사람은 적다. 여성 농부로 등록된 사람이 더 많아져서 '여성 혼자 농사라니~'라는 이야기를 덜 먹고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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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나와 비슷한 처지의 청년 농부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다.
"빛나씨가 생각하는 자발적 가난은 뭐예요?"
나는 "나에게 필요한 만큼만 얻는다면 나머지는 자연이 행복하도록 돌려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당근을 키울 때 사람들이 최대한 당근을 많이 심어 상품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보단 당근에게도 당근이 필요한 면적을 넉넉히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동물복지처럼 수확을 최대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당근이 행복한 공간은 얼마일까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보는 손해는 나에겐 자발적 가난한 손해라고 생각해요. 난 나도 행복하고 당근도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조금 못생긴 당근도 조금 다른 당근도 당근으로서 가치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도 비장애인 이성애자 남성만 가치 있는 게 아니듯이 우리가 정상이라고 정하는 기준은 너무 폭력적이에요. 동식물에게도 그 기준이 그대로 적용돼요. 그게 슬퍼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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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작업은 의외로 사람을 즐겁게 한다. 생각하지 않고 몸을 움직이는 시간은 삶에 꼭 필요하다. 농사는 생각과 고민도 필요하고 몸 노동도 필요해서 균형 있는 삶을 살게 하는 좋은 직업이다. 돈이 안 들어오는 1~4월을 잘 견뎌내기만 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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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를 짓는 것이 가장 생명을 적게 죽이는 직업이며, 생명을 죽이는 일을 직접 눈으로 보고 직접 손으로 행하기 때문에 자기 반성을 할 수 있는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이 먹거리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죽이고 무엇을 했는지 과정을 모두 보는 일이기 때문에 그 가치가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다. 많은 직업이 내가 못 보고 내가 모르는 경우가 많아 무감각해지고 자기반성이 사라진다. 브로콜리를 생산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풀과 벌레가 죽어야 하는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자연이 필요한지 알기에 허투루 먹지 않고, 허투루 버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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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건 사실은 별거 없다. 일하고 밥 해먹고 나를 위로하는 게 사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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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농사지을 때 비닐을 안 쓰지만 브로콜리를 팔기 위해서는 150개의 비닐봉지를 써야한다. 비닐은 환경비용이 훨씬 많이 드는데 1개당 10원도 안한다. 처리비용까지 값을 넣어 팔아야 비닐에 넣어달라는 말을 안 할까? 오래 저장하기에 비닐이 좋으니 멀리 가는 물류 시스템엔 비닐을 쓰라고 하는 거다. 각 지역에서 농산물을 소비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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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농부가 되려면 농부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사람들이 말하지만 그런 무거운 무게로 농부가 되고 싶지 않다. 하루에 농사일을 4시간만 하는 농부라는 내 목표를 무너뜨리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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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는 사실 풀과의 전쟁이다. 주인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라는 식물들 곁에서 풀을 매는 일 말이다. 농부는 사실 별것 없다. 미친 듯이 쓰고 버리고 다시 욕망하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조금 느리고 작은 삶으로 살면 된다. 그런 삶으로 가기에 농부만 한 게 없다.